[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71) 안분자족(安分自足)
입력 2021. 02. 02 18: 11
그림/정경도(한국화가)
이제 홍수개의 흉악한 공격 대상이 될 옹기장수 아내를 잘 방어해 보살피고 그 다음은 어떻게 그 흉악한 남편 홍수개의 버릇을 효과적으로 공격해 개과천선(改過遷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고민해야했다.
그러나 집안에만 갇혀 살아온 정씨부인에게 남편 홍수개의 못된 버릇을 고칠 특별한 그 누구의 원군(援軍)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남편의 일인데 여기저기 그 포악한 흉허물을 까발려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자기 욕망대로 휘두르며 살아온 홍수개에게는 일가친척의 웃어른을 동원한 여타의 방법이나 타이름은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라는 것을 정씨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홍수개는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느냐고 악다구니를 쓸 것이었고 정씨부인을 향해 온갖 타박과 심지어는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을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정씨부인의 머릿속에 순간 시아버지 홍진사의 말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아들 홍수개의 망나니짓에 결국 마음의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워버린 홍진사는 며느리에게 그것을 몹시 미안해했다.
“내가 자식을 잘못 길러 너를 고생시키는구나. 미안하다. 아가야!”
밥상을 들고 가거나 탕약을 끓여 들고 가면 홍진사는 며느리에게 늘 그렇게 말했다. 정씨부인은 며느리로서 시아버지 홍진사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 철을 꼬박 병석에 누워있던 홍진사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깊어진 어느 날 며느리 정씨부인이 탕약을 들고 가자 그날따라 자리에 일어나 앉아 지필묵을 꺼내놓고 붓을 들고 글씨를 쓰려하고 있었다.
“아니 아버님! 편찮으신데 자리에 누워있지 않고요?”
정씨부인이 말했다.
“어 어흠! 내 너에게 긴히 이를 말이 있어 그렇다. 내가 저런 자식을 얻은 것도 다 나의 과보(果報)가 아니겠느냐! 젊어 철없을 적 뉘 집에 핀 예쁜 꽃에 현혹되어 잘못 꺾은 죄가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지 않느냐 싶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라고 닦을 수(修)자를 써서 수개라고 지었건만 어만 것만 닦고 다니니 참으로 그것도 내 욕심이었다. 수준이 낮은 일반속인들이야 재(財-돈), 색(色-여자), 명(名-명예), 식(食-밥), 수(壽-수명)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더냐! 이런 욕심만 많은 자가 용케 재주가 좋아 세상에 나가 시험에 합격해 자리에 앉으면 제 지위나 높이고 백성들이나 핍박해 살상하고 부정부패로 세상이 지극히 혼탁해지는 법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마음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수양하며 초야에 묻혀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을 내 요즘에야 겨우 깨달아 알았구나!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는 것보다도 그런 경지가 더 어렵고 힘든 것이었어! 그러기에 공자가 제자들 중 세상일에 유능한 자공(子貢)보다도 욕심 없이 자신을 수양하며 초야에 묻혀 살줄 알았던 안회(顔回)를 더 높이 산 것이었지!”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72) 홍안기(洪安氣)
그림/정경도(한국화가)
낮은 목소리로 이어가는 시아버지 홍진사의 말을 정씨부인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아마도 홍진사는 병석에 누워 자신의 학문과 지나온 인생을 깊이 헤아려보며 세상사와 삶의 어떤 경지를 나름대로 깨닫고는 그것을 며느리 정씨부인에게 참회하듯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자란 사람이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다가 잘못하면 자기뿐 아니라 천하를 모조리 다 그르칠 수 있어! 그래서 선비의 출사(出仕)는 사심이 없어야 으뜸이지! 그래서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가 청사(靑史)에 길이 남은 까닭이야! 으음!........ 모든 것은 되돌아와서 고요히 다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로구나! 내가 죽고 언젠가 손자를 낳거들랑 안분자족, 안빈낙도에서 그 편안할 안(安)자를 따고 우리 홍가 집안의 항렬자가 기운 기(氣)자이니 안기(安氣)라고 이름을 짓거라! 우리 손자의 이름은 홍안기(洪安氣)니라! 홍씨 집안을 평안히 할 기운 잘 알았지!”
홍진사가 며느리 정씨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어 어어흠!.......... 아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 집안을 지킬 사람은 너 밖에 없다. 힘이 들더라도 이 집안을 잘 지켜주고 후대를 이을 아들을 꼭 낳거라! 내 그 손자 이름자를 써주마! 제 아무리 악인이라도 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느니라! 내가 그랬구나! 아가야! 미안하구나!”
그렇게 말하며 홍진사는 붓에 먹을 잔뜩 묻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홍안기라는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한자(漢字)로 써가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떠오른 정씨부인은 비장한 결심을 마음속으로 가다듬는 것이었다. 난봉꾼 남편 홍수개를 막을 천하의 인재는 바로 홍수개의 큰아들 홍안기라는 것을 정씨부인은 생각해 냈던 것이다.
시아버지 홍진사가 세상을 떠나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하늘을 볼 수 없었던 정씨부인을 홍수개는 집을 나갔다 돌아오면 간간이 방에 들기도 하더니 삼년이 지나자 기적처럼 태기가 있었다. 시아버지 홍진사의 삼년상을 치르고 이듬해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시아버지 홍진사를 쏙 빼닮았단 말인가! 정씨부인은 마치 시아버지 홍진사가 환생(還生)이라도 해온 듯싶어 아들의 얼굴을 볼 때 마다 참 기이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아이의 이름을 홍안기라고 지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홍안기는 열여섯이었다. 커 갈수록 행동하는 모습이며 서책을 읽고 익히며 하는 모양이 영락없는 제 할아버지 홍진사였다. 정씨부인은 제 아버지 홍수개를 닮지 않고 할아버지 홍진사를 닮은 아들 홍안기를 그야말로 시아버지 홍진사의 말처럼 고요히 제 분수를 알고 지키며 안빈낙도하며 살아 갈 줄 아는 청빈한 선비로 기르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분에 넘치는 과분한 벼슬이며 출세의 영광 따위는 바랄 바가 아니라는 것을 정씨부인은 시아버지 홍진사의 말이 아니라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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