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집 한 채 있으면 좋겠네 / 최석우
낮은 쪽담 둘러
백목련 자목련 서너 그루쯤 품고 있고
그 아래 백합과 수국이 촘촘하고
마당 제일 깊숙한 곳에
국화가 몇 이랑 빼곡이 심어져 있는 집
뒤꼍에 나가면
열 뼘 채마밭
상추랑 쑥갓이랑 배추랑 심어 놓고
호박이랑 풋고추랑 실파랑 심어 놓고
배부른 장독에서 된장 퍼지게 담아
낡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이고
모락모락 김 오른 보리밥 한 사발에
등나무 넝쿨진 평상에 앉아
한 잔 반주 청하면
설운 님 사연이 한 잔이요
설운 내 사연이 한 잔이요
주워들은 남 사연도 설운 한 잔이라
넓은 흙마당
해는 뒷걸음질쳐 사라지고
무정한 바람에
꽃도 잎도 지고
잡을 수 없는 내 청춘
권주가도 서글퍼 취한 몸 뉘이면
아질한 흙내가 젖은 눈 감겨주고
떠나간 얼굴들 별 되어 나를 보고 있으리
속절없이 하얀 눈 쏟아지는 겨울날
뜨끈한 아랫목에 퀴퀴한 고서(古書) 베고 누웠다가
꿈결에 詩神이 귀띔해주는 한 구절 냉큼 얻을 수 있는
그런 집
그런 집 한 채 있으면 좋겠네
참말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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