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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대한민국 제1호] 약사

by 까망잉크 2011. 2. 1.
[대한민국 제1호] 약사

유세환, 종로3가에 인수당약국 열어

한국인 최초의 약사는 유세환(劉世煥·1876~?)이다. 1893년(고종 30년) 관립 일어(日語) 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한 뒤, 1897년 일본으로 건너가 1900년 일본 도쿄약학교(東京藥學校), 1902년 제국대학교 의과대학 선과(選科)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당시 약대와 의대를 나온 그는 귀국 후 1903년 광제원 국립병원 위원으로 관직에 발 디뎌 대한의원(서울대병원 전신)교수<사진>(1909년 5월 2일 황성신문에 게재된 교수 임용 관보), 육군 약제관(약사)을 거쳤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된 이후 서울 종로 3가에서 ‘인수당약국’을 개원했으나 7년 뒤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저명한 의사로 알려져 1908년 일본인들이 만든 의사회 회원이 되었고, 1911년 조선총독부로 부터 의술개업 허가장을 받기도 했다. 대한의원의 약제사(1907년)로 김상섭이 임용되기도 했다.

해방 후 면허 갱신에서 약사면허 1호를 기록한 이는 이호벽이다. 이호벽은 조선약학교 1회 졸업생으로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1920년 첫 약사면허시험에서 수석 합격했다. 우리나라 약학의 정식교육은 이처럼 조선약학교에서 시작됐다고 하지만, 그 뿌리는 1914년에 세워진 약품취급강습고와 1915년에 세워진 1년 과정의 조선약학강습소에 두고 있다. 조선약학강습소는 당시 조선매약 사장인 이석모가 서울 구리개(을지로)의 한약업자들의 자금을 모아 만든 한국 최초의 서양 약학 교육기관이었다. 이 학교가 3년 뒤 2년제인 남녀공학의 조선약학교가 된 것이다. 조선약학교는 1918년 1회 신입생을 모집해 서울 종로 6가 인근에 30여평의 한식 기와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20년 5월 첫 배출한 졸업생 40명 중 한국인은 10명이었다. 1920년 11월에 치러진 조선총독부의 첫 약제사(1953년 약사로 명칭 변경) 시험에서 11명이 합격했는데 그중 한국인은 조선약학교 출신을 포함한 5명이었다. 이호벽을 비롯해 이정재·이중규·신경휴·황호현이었다. 이호벽은 약제사 면허를 딴 뒤 총독부의원과 적십자병원에서 약제사로 근무했다. 해방 후 약국을 운영한 그는 1986년 타계하면서 대한약사회에 장학금을 기탁해 지금도 그의 아호를 딴 하봉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당시 차석으로 합격한 이정재는 1922년 서울 낙원동에 약국 삼우당을 열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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