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설탕 공장
시운전 때 나온 것은 덩어리 설탕
설탕이 우리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명종 때 이인로의 '파안집'에서다. 학자들은 설탕이 그 이전부터 후추 등과 함께 중국에서 전래됐다고 보고 있다.우리나라 설탕공장은 일본 기업인 '대일본제당'이 사탕무를 원료로 하는 공장을 평양 선교리에 세운 것이 최초이다. 대일본제당은 1917년 사탕을 제조하기 위해 평양에 자회사인 조선제당주식회사를 세웠고, 이를 합병한 뒤 1919년 평양 선교리에 2300여 평의 공장부지를 확보해 1922년 7월에 준공했다. 그러나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 당시 대구의 흑기상점 등 서울과 평양 등에서 많은 상점들이 일본에서 설탕을 수입해 팔았다. 설탕은 피로회복제처럼 인식됐고 단맛이 인기를 모았다.
- ▲ 제일제당설탕공장
해방 후 우리 손으로 최초로 지은 설탕공장은 1953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부산 전포동에 지은 제일제당설탕공장〈사진〉이다. 제일제당은 고무공장이 불탄 자리를 매입해 공장 건물을 짓고, 일본에서 기계설비를 들여왔다. 공장건설과 생산설비 설치 후 시운전을 시작한 날이 1953년 10월 28일. 그러나 시운전 직후 쏟아져 나온 것은 설탕이 아니라 콩깻묵 같은 덩어리였다. 원심분리기가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다. 해체와 조립을 반복하고, 투입하는 원당의 양을 이리저리 조절하면서 문제점을 찾아낸 결과 시운전 후 8일 만인 11월 5일 하얀 설탕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지금의 CJ제일제당(당시 제일제당의 후신)은 이날을 회사 창립기념일로 정했다.
당시 제일제당이 책정한 설탕값은 수입품의 3분의 1 수준인 근당 100환이어서 공장을 24시간 가동해도 수요를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1954년 4월부터 12월까지 생산시설을 두 배로 확장했다. 이해에 제일제당은 국내 설탕 총소비량 2만8923t의 33.3%에 해당하는 9635t의 설탕을 생산, 급격히 수입품을 대체해 나갔다.
출처:조선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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