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야!
시인/혜원 박영배
누야!
옛날 우리 사월 이맘때,
꽃구름 피는 언덕배기 빨간 복사꽃 아래서
나물 캐며 내게 불러주던 노래 생각 나나?
바구니 뺏기고 서럽게 우는 누야를 내가 달래던 기억도,,,
멀리 뱃고동 소리 들리면 장(場)에서 돌아오실 엄마를 만나러
십리나 된 길을 마중갔었지
누야 가 사월 이맘때쯤 연지곤지 찍고 시집 가던 날,
난 괜히 저만치서 누야가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어
부잣집으로 시집가는 게 걱정 된다고 엄마 손 붙잡고
투정하듯 중얼거리든 누야
난 그때 미안해서 하는 소리겠지 하고 은근히 부러워했어
그랬던 누야 가 보리 빵이 생각나서 다녀가고
강냉이 죽이 먹고 싶다고 다녀 갔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없는 집 아이라고 구박받고
못 배운 아이라고 천대받고
시집살이 서러워 혼자 울다가 잠깐잠깐
친정에 와서 말도 못 하고 그냥 돌아 간 거
난 뒤에 알았지만 아마 엄마는 알고 있었을 거야
결국 시집을 나와 지금은 수녀가 된 누야,
모습은 옛날 그대론데 팔순을 앞둔 주름진 얼굴
십자가 앞에 무릎 끓고 내 탓이라고 성호를 긋던 하얀 손
옛날 사월 이맘때,
꽃구름 피던 언덕배기 복사꽃 아래서 누야가 불러주던 노래,
이젠 영영 들을 수가 없구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