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⑮ 역사는 ‘배신’으로 꾸며진다
(주)하동신문
정연가 (하동문화원장)
인류 역사의 굽이 마다에는 독사 잇빨 같은 가증스런 ‘배신’이 있었음이 곧 들어난다. 사육신의 일망타진은 김질(金질)의 ‘배신’때문이었고, 연산군의 무오사화(戊午史禍)는 간신 임사홍(任士洪)의 ‘배신’에서 비롯되었다. 세간에 흔히 나도는 문헌 가운데, 한국의 근·현대사 물길을 틀어 버린, ‘12·12사태’ 진상에는, 아무개의 ‘배신’이 서려있고, 배신자들은 곧 고위직에 올라 영달했다는 가혹한 이미지를 남긴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도 후세의 귀감거리가 될 소인배들의 작태가 풍성하여, 기록에 재미를 느낀다. 사람들은 흔히 ‘그 시대는 어쩔 수없었다’는 말로 자위를 하지만 역사는 지극히 냉철하다.
조선의 3대왕 태종이 권력을 쟁취하는데는 참으로 기가 막힌 ‘배신’이 성공 요인이었다. 태조의 뜻을 받들어 세자 방석(芳碩)을 보호하고자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을 중심으로 한 신료들 가운데, 세자의 장인 심효생(沈孝生), 삼군부좌군절제사 이무(李茂)·참찬문하부사 박위(朴위) 등 셋은, 세자의 이복형들을 적당한 직위를 주어 변방으로 내 보내 버리든지, 아니면 그들을 일격에 처단할 궁리를하던 중 어느날, 도성 안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각자의 운명을 점쳐 보았다. 그런데 순진한 점쟁이는 세사람 모두에게 안 할 말을 하고 말았다.
“대감들! 말을 갈아타야 생명을 부지 할 수있겠오! 명심들 하시오!”
셋은 입맛을 다시며 점방을 나오는데, 이무가 맨 뒤에 나오다가, 점쟁이에게 재차 확인을 했다. 점쟁이는 소매를 붙잡고 이무에게 간곡히 타일렀다.
“제발 내 말을 믿으시오, 말을 갈아 타야 살 수있오!” 이무가 방을 나왔는데, 박위가 몇걸음 걷다가 느닷없이 돌아서 점방으로 되돌아 들어 가, 단칼에 점쟁이를 찔러버렸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허공을 찢더니 조용해졌다. 심효생이 박위를 나무랐다.
“죽일 것까지야 없지 않소?”
“아니오! 저자는 우리의 속내를 꿰뚫고 있소!”
심효생은 그 길로 대군들을 몰아 죽이기로 한 남은을 찾아가 거사를 도모하는데, 점쟁이의 점괘가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러더니
“하기야 제 목숨도 어찌 될지 몰랐던 엉터리가 아닌가!”
라고 중얼거리기는 했으나, 불안한 표정은 감추질 못했다.
사건은 신중한 정도전과는 합의를 미룬 채 성질 급한 참찬문하부사 남은이 먼저 일을 벌였다. 찬성 유만수(柳曼殊)·심효생·이무·박위 등과 모의, 신덕왕후 강씨 탈상이 끝난 뒤, 세자의 이복 형들을 함께 모아, 밤중에 병석의 태조를 문병하도록 어명을 꾸며, 대궐로 들어오게하여 일격에 그들을 죽여 버리기로했다.
태조7년(1398년) 8월 25일 밤, 남은 등은, 박위·유만수 등 삼군부 군사들에게 거사를 맡기고, 정도전까지불러 남은의 첩실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좋은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입궐하던 이방원이, 갑자기 부인 민씨가 복통으로 죽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되돌아갔다. 이는 대궐의 수상한 기미를 의심한 민씨가 꾸민 연극이었고, 그 덕에 이방원은 물론 대군들은 목숨을 건질 수있었다. 이에 일이 틀어져 가는 낌새를 살핀 이무가, 전격적으로 ‘배신’을 때렸다. 이무는 곧 이방원을 뒤따라 찾아가, 남은 등의 모의를 자세히 고변하니, 이튿날 새벽 이방원은 숨겨 두었던 가병들를 전격 동원, 남은의 첩실집을 급습하고 불을 질러 도망치는 정도전·남은, 심효생 등을 극적으로 처단해 버렸다. 무장한 유만수가 이방원의 주변에 서성거리자, 이무가 급히 “유만수는 세자 편입니다!” 하고 부르짖으니, 유만수는 이무를 향해 “이 배신자야!”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 이방원의 수하 김소근(金小斤)이 유만수와 그의 아들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이리하여 이른바 무인정사(戊寅靖社), 또는 ‘이방원의 난’이라 기록 된‘제1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의 뜻대로 돌아갔고, 정도전이 노린 ‘신권(臣權)정치’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무는 정사2등 공신에 책록 되었으나, 정종이 등극하자 남은·정도전과 함께 불충지당으로 몰려 유배되고, 뒤에 풀려 나와, ‘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 편에서 공을 세워 1등공신으로 정승까지 오르는 광영을 입었다. 그러나 너무 기고만장하여 죽산에 유배 중 처형 되고 말았다. 참으로 부질없는 목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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