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17 평소의 처신이 문제다!
정연가 하동전문화원장
조선 정종 즉위년(1399) 5월 어느날, 관기를 총괄하는 대사헌 권근(權近)은 한 건의 상소문을 접수하고 기절 초풍했다. 상소는 정권실세 이방원(李芳遠)의 윗동서로 정사일등공신인 조박(趙璞)이 올린 것으로 내용이 극히 괴상 망측하여 하늘이 진동할 지경이었다.
지난해 제1차 왕자의 난 때 저세상 식구가 돼버린 폐세자 방석(芳碩)의 기생첩을, 태조와 사돈관계인 참찬문하부사 이거이(李居易)가 건드렸는데, 또한 그의 아들로 태조의 사위인 상당후(上黨候) 이저(李佇)도 취하여, 부자가 함께 천상(天常)을 어지렵혔다는 소문이 파다하므로, 이를 사헌부에서 엄밀히 조사하여 진상을 명명 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거이는 조선 왕실의 척족이었다. 그의 아들 이저가 태조 이성계의 장녀 경신(慶愼)공주와 혼인한 사이였으니, 만에 하나 사건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왕실 주변이 강상의 도리를 무너트려 버린 추잡스럽기 그지 없는 결과가 될 일이었다.
사태 보고를 받은 왕권 실세 이방원은, 사내들의 아랫도리 얘기를, 더구나 왕실 척족들의 짐승같은 짓거리를 함부로 공론화한 윗동서를 즉시 불렀다. 아내 민씨가 형부를 대접한답시고 성의껏 차린 아침 밥상을 가운데 놓고 사연을 따져 보고는, 그날로 손위 동서의 벼슬을 벗겨 죄인으로 만들어 시골 이천으로 귀양을 보내 버렸다.
조박은 고려 우왕8년에 문과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치며 이성계를 도와, 고려의 권신 이색(李穡)·이인임(李仁任) 등을 탄핵, 권부에서 퇴출시키기도했고, 조선이 건국되자 예조전서(禮曹典書:외교부의 수장)로 개국1등 공신에 오르기도하여 권력의 중심에서 노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조박은 격변하는 정권 과도기에 뭣인가 한건을 터트려 더욱 정계의 주목을 받아야한다는 욕구가 치솟아, 세간에 떠도는 소문의 진상을따져 보지 않은 채 그대로 공론에 들어 얹어 버린 것이다.
이방원은 이복 아우 방석의 기생첩 노릇을 했던 계집을 불러 직접 문초, 진상을 캐지 않을 수없었다.
“네가 이거이 대감을 뫼신 일이있느냐?”
하고 물으니, 계집은 서슴없이
“예”
하고 힘은 빠졌으나 또렷이 대답하였다. 놀란 이방원은 신음 소리와 함께 또 물었다.
“그렇다면 이저와도 잤느냐?”
했더니, 계집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머리를 치켜들고
“아니옵니다! 그건 헛소문입니다. 이저 대감은 집앞에 왔다가 이거이 대감이 안에 계시는 줄 알고 가버렸다고 들었습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일의 상황이 세간에 소문으로 퍼질 만도하였다. 이거이 부자가 폐세자 방석의 기생첩 거처 를 기웃거렸음이 만 천하에 들어난 셈이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중도 보고 속(俗)도 본다』는 말이 있지만, 이 일만은 그리 보통으로 짚고 넘어갈 사달이 아니었다. 이방원의 아내 민씨가 소문을 듣고
“사내들이란 그저… …”
하고 탄식하는 데는, 다분히 여색을 어지간이 탐하는 남편의 속내까지 찌르는 말투가 분명하였지만, 이방원은 남자들의 배꼽 아래 풍문에는 관대했다. 즉각 계집의 명줄을 끊어 강물에 띄워 버리게하고 사건은 덮어 버렸다. 책사 하륜(河崙)이 이방원 앞에 나타나 화사한 얼굴로 뜻밖의 사건 때문에 난제(難題)를 쉽게 풀게 되었다며 맞 손바닥을 쳤다.
그 무렵 왕권확립과 정권의 안정을 위해, 왕자와 대신들이 거느리고있는 사병(私兵)들을 혁파하려 하는데, 가장 많은 사병을 거느린 이거이가 큰소리를 치며 반대하고 나서니 일이 진척이 없던 판에, 이제 이거이의 체면이 구겨져 버렸으니 사병 혁파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과연 하륜의 예측대로 사병혁파 일은 순순히 풀려 나갔다. 이거이 부자의 평소 몸가짐이 세간의 의심을 살만 했던가 싶다.
무릇 사람은 지체가 높아지면 몸가짐이 신중해야한다. ‘참외 밭에서 신끈을 고쳐 매지 말라’느니, ‘불 때지 아니한 굴뚝에 웬 연기가 날까’라는 옛말은 누구나 새겨 들어야 할 만인을 향한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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