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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 64 “돼지가 닮은 그 자와 어떤 관계냐?”

by 까망잉크 2018. 8. 27.

 

 

 

<조선왕조 뒷 이야기> 64 “돼지가 닮은 그 자와 어떤 관계냐?”

(주)하동신문 

중종반정中宗反正 며칠 전, 연산군은 종묘宗廟에서 친제를 올리느라 제향 준비를 했다. 왕실의 근엄한 향례享禮라 임금이 손수 제물을 차려 놓기도했다. 마침 연산군이 큼직한 돼지 머리를 조심스럽게 제상에 고이고 있을 때, 옆에서 시중들며 거들던 약방 기생 하나가 느닷 없이 “훗훗”하고 경망스럽게 웃었다. 연산군은 조심성 없는 기생의 웃음소리가 비위에 거슬려, 상을 찡그리며 까닭을 캐 묻기에 이르렀다.
“너는 누구냐?”
“예! 약방 기생 산홍山紅이라 하옵니다”
“어찌하여 대궐에 들어 왔느냐?”
“경상도 성주고을에서 채홍採紅 사또의 천거로 입궐하였아옵니다”
산홍은 성주 기생이었다가 얼굴이 반반한 탓으로 채홍사 올가미에 걸려 연산군의 궁녀 노릇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뭐가 우습더냐?
“예, 신첩의 고향 성주땅에 장순손張順孫 영감이 귀양을 살고있는데, 얼굴이 돼지를 닮았다하여 별명이 장저두張猪頭였습니다. 돼지 머리를 보니 그 영감 생각이 불현듯 나서 그만 웃음을 참을 수없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음! 장저두라… , 그 장순손이 왜 생각 났더냐? 무엇 때문에…?”
연산군의 눈썹은 날카롭게 모아졌고, 목소리는 찢어졌다. 장순손을 기억하는 왕의 다그침에 기생은 할 말을 잃고 안절부절했다. 그 순간
“하하하! 딴은 그럴 만도하구나! 그자가 돼지를 닮은게 아니라 돼지가 그자를 닮았느니라! 네 이년! 그 장저두와 어떤 사이더냐?”
웃어 넘길듯하던 연산군의 상판때기가 갑자기 다시 일그러지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따지고 들었다. 산홍은 엉겹결에 중얼 거렸다.
“예! 그저 그렇고 그런…”
연산군은 산홍의 대답을 통해, 자신이 거느린 궁녀를 돼지를 닮은 장순손이 먼저 건드린게 분명하다는 짐작에서, 「그런 죽일 놈! 그 불충한 놈이 나보다 먼저 이런 미색을 손대다니…!」하는 상상 끝에 드디어 의금부에 호령을 내렸다.
“성주땅에 정배定配 사는 장순손을 당장 잡아 올려라!”
장순손은 얼굴은 돼지를 닮았어도 문과에 3등으로 뽑혀, 부제학·도승지·전라도관찰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중신이었다. 그는 어느날 궁궐 뒤뜰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연산군의 망동을 꼬집었다가, 갑자사화 때 고향 성주에 보내져, 세상 밖에는 나가지 못하게하는 본향안치本鄕安置 처분을 받아 귀양을 살고있었다.
그런 장순손이 자다가 홍두깨 맞는 꼴이 되고 말았다. 채홍사 손빨에 기생첩 뺏긴 것도 억울한데, 전혀 관련 없는 종묘 제상 돼지머리 때문에 명줄 마져 끊게 됐으니…. 지은 죄라고는 『돼지 닮은 얼굴에 기생첩이 임금 첩실 될 줄 몰랐던 죄』뿐이라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장순손은 울부짓는 가솔들을 뒤로하고 결박 당한 채 금부도사를 따라 죽음의 길을 나섰다. 그들 행렬이 함창 공검지 아래 세 갈랫길에 이르렀다. 한 길은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통해 서울로 올라가는 조금 멀지만 큰길이고, 한 쪽 길은 선산善山을 거처 역시 새재로 가는 길인데, 비좁은 산길이나 조금 빠른 지름길이었다.
길이 서툰 금부도사는 장순손에게 어느 길로 가야 할 것인가를 두고 물었다. 그때 장순손 눈 앞에 난데 없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좁은 길로 사쁜 싸쁜 달아 나는게 아닌가. 장순손은 「옳지!」 싶어 좁은 소로로 가자하고, 그 길을 택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내가 전에 과거를 몇 번 치렀으나 늘 낙방했는데, 한번은 여기서 고양이가 길을 건너 가는 것을 보고 그 길을 택해 올라가 급제를 했단 말이요. 오늘 또 고양이를 봤으니 무슨 길조가 아닐까 싶소!”
이때 대궐의 연산군은 장순손이 죽는 꼴을 어서 빨리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기다리기가 지겹다는 듯 왕은 따로 날랜 군사 하나를 뽑아 급히 내려 보내며 호통을 쳤다.
“너는 날쌘 말을 골라 속히 성주땅으로 내려 가다가 장순손이 잡혀 올라 오거든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머리만 급히 가져 오너라!”
명령을 받은 선전관이 성주땅으로 말을 달렸는데, 큰 길로만 가다가 좁은 길로 올라 오던 장순손 일행과 그만 길이 엇 갈리고 말았다.
장순손 압송 행렬이 문경에 다달았을때, 그들은 엄청난 소문을 들었다.
이른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 났다는 것이었다. 본래 경사스런 소문을 듣는 곳이 곧 『문경聞慶』 아니던가. 세상이 뒤집어지니 장순손은 다시 조정에 나와 관직이 욱일 승천, 중종28년(1533) 73세로 영의정에 오르고 이듬해 숨졌다.                    
 정 연 가 (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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