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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 67

by 까망잉크 2018. 9. 5.

<조선왕조 뒷 이야기> 67(주)하동신문 

난세亂世에는 별의 별일이 다 벌어진다. 전란 통에 피난하느라 헤매다가 산골에서 며칠을 굶어 머리가 돌아 버린 아녀자가, 엎고 다니던 아기가 입맛 당기는 약병아리로 보여 삶아 먹은 일도 있었고, 양반호족 출신 벼슬아치가 목숨을 부지 않으려 벽지로 도망쳐, 천노賤奴의 사위가 된 일도 있다. 연산군 시대 천하의 흉간兇奸 임사홍任士洪은, 왕의 비위를 맞추느라 죄없는 아들 임희재任熙載를 죽이라고 아첨을 떨었으니, 그 짓도 오직 권력에 빌붙으려는 형언 할 수 없는 패악悖惡이라, 이런 일은 모두 제대로 된 세상에서는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성종3년(1472)에 태어난 임희재는 간신으로 악명을 떨친 아비 임사홍과는 달리 마음이 곧았다. 이는 필경 유학자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선비 기질을 익혔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는 연산군4년(1498) 문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뽑혀 첫 벼슬이 장래가 촉망되던 승정원정자正字였다. 이어 곧 홍문관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로 학문을 익혔다. 
사가독서란 「임금이 특별히 시간을 주어 책을 읽게하는 제도」였으니, 이를테면 국록을 주며 공부를 시킨 셈이었다. 
그런 임희재가 혼탁해지는 연산군치세에 그만 벼슬살이 재미를 잃고 말았다. 
광폭한 왕이 젊디 젊은 사림士林들을 멋대로 죽이는 아수라장을 사흘이 멀다하고 벌이니, 울분에 젖은 임희재는 김종직 문하에서 함께 배웠던 동문 강백진康伯珍·이계맹李繼孟·강혼姜渾 등과 어울려, 「시대를 잘못 만났음」을 탄식하고 뒤죽 박죽 헝클어진 피로 얼룩진 정국을 개탄하였다. 
이런 그들의 불만을 간파한 권력 조무래기들은, 이들을 「붕당을 지어 정치를 비방하고 세상일을 비평하였다」는 죄명을 씌워, 각 곤장 100대씩을 쳐 백리 밖으로 쫓아 버렸다. 김종직의 제자라면 모조리 서리 맞아 말라지는 판국에 그래도 다행이었다.
글을 잘 짓고 글씨에 능했던 임희재는, 혼탁한 세상을 만난 서글픈 심경에서 시름에 겨워 이런 시를 써서 병풍을 만들었다.
祖舜宗堯自太平 
요·순을 본받으면 저절로 태평하련만
秦始何事苦蒼生 
진시황은 무슨 일로 백성을 괴롭혔나
不知禍起肅墻內 
재앙이 담장 안에서 일어 날줄 모르고
虛築防胡萬里城 
공연히 오랑캐 막으려 만리성을 쌓았구나
임사홍이 권부의 핵심에서 세력을 피우던 어느날, 갑자기 연산군이 그의 집을 찾아, 방안에 펼쳐진 병풍글을 읽고 말았다. 대가리 영리한 연산군은 즉석에서 절귀絶句가 자신을 꼬집은 내용임을 알고 낯이 화끈 거려 임사홍에게 다그쳤다.
“누가 쓴 것이냐?”
“제 자식 놈 희재가 쓴 것이옵니다”
된대로 대답하지 않을 수없었던 임사홍의 대꾸에, 연산군은 노기 가득찬 일그러진 표정으로 뇌까렸다.
“경의 아들은 불초하다! 내가 죽이려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떤가?” 
정신 줄을 놔버린 임사홍은 오들 오들 떨며 꿇어 앉아 나불 거렸다.
“이 자식의 성질과 행실이 온순하질 못한 것은, 전하의 말씀과 같습니다. 신이 벌써 아뢰어야 했으나 미처 아뢰지 못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진즉 임금에게 고하여 요절을 내야했었는데 늦었으니, 알아서 하시라」는 의견이었다.
연산군은 당장 목을 따버리고 싶도록 임희재가 미웠으나, 너무 쉽게 「죽여도 좋다」는 아비 임사홍의 말을 충정忠情?으로 받아 드려, 목은 붙혀 멀리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 보내는 처분으로 끝냈다.
험한 세상에 선택해서 고를 수없었던 사람 같지 않은 아비를 만나, 앞길이 창창했던 한 인재가 이렇게 망가지고 말았던 것이다.
연산군이 어미의 죽음을 알고 복수극으로 연출한 갑자사화는, 순전히 임사홍이 극본을 쓴 한편의 역사적 비극이었다. 
그는 폐비의 친정 어미가 가보로 고이 간직했던, 폐비의 피 묻은 수건을 연산군의 코 밑에 들이대 폭군을 더욱 미쳐 날뛰게했던 주역이었다. 임희재는 귀양에서 풀려 났다가 곧 갑자사화때 죽음을 당했다. 
항간에 「폐비와 관련 없는 임희재 죽음은, 그가 아비의 잘못을 자주 꼬집으니 임사홍이 아들을 죽음으로 끌어 넣어 죽인 것이다.」했다. 
33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버린 임희재는, 글씨 송설체에 능해 경기도 여주 <임원준任元濬신도비문>을 써서 남겼다. 
좌찬성을 지낸 임원준은 임희재의 할아버지였고, 임사홍은 효령대군의 손자 사위였으니, 그럴듯한 가문의  임사홍이었것만 함부로 날뛰다가 중종반정때 처형돼 아들 임희재 뒤를 따라 죽고 말았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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