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71
(주)하동신문
중종 즉위년(1506) 9월 2일 새벽녘, 반정 변란 끝 무렵, 연산군은 주위에 대고 활과 화살을 가져 오라 외쳤으나 듣는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맥이 빠져 버린 연산군은 다급히 왕비 신씨에게 나가 「간절히 빌어 보자」했다.
그러나 왕비는 현명하였다.
“이지경에 이르러 빌어 본들 무슨 소용있으리오! 이미 늦었오! 순하게 받는 것만 못 할것이오! 전일 여러번 간해도 듣지 않다가 이리됐으니, 저지른 사람이야 죽어 마땅하겠지만 이 불쌍한 두 아이는 어이 할꼬!”
저지른 자야 죽어 싸지만, 죄없는 어린 두 왕자 걱정으로 왕비가 통곡하니, 연산군도 눈물을 흘리며
“말한들 무엇 하리오! 뉘우쳐도 어찌 할 수가 없다!” 했다.
날이 밝자 왕비는 대궐을 걸어서 나가는데, 비단 신이 자꾸 벗겨져 수건을 찢어 동여맸다. 세자와 대군은 유모와 함께 어느 무당집에 숨어 있었는데, 해가 저물도록 굶었다. 무당이 밥을 지어 먹게 했더니, 철없는 대군의 입맛은 그대로라 투정을 부리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찌 새끼 꿩을 올리지 않느냐?”
유모가 울면서 대답했다.
“내일은 이런 밥만 얻어 먹어도 다행일 것입니다!”
강화도로 쫓겨 가는 연산군 행렬길에는 나인 4명, 내시 2명, 먹거리 담당 1명만 따랐고, 당상관 한 사람이 약간의 군사를 거느리고 호송했다. 폐왕 연산군은 붉은 옷에 갓을 쓰고 띠도 매지 않은 차림으로 내전문 밖에 엎드려 인사를 올리며, 「목숨을 붙혀 주니 감사하다」했다.
평교자를 타고 궁문을 나올 때 갓을 얼굴을 가리듯 숙여 쓰고 머리를 들지 못하니, 벼슬 노리는 선달 차림만도 못했다. 강화도 교동까지 호송했던 장수 심순경(沈順徑)이 돌아와 고했다.
“가는 길에 노인과 아이들이 달려와 다투어 손까락 질 하면서 통쾌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연산군은 평일에 한 짓이 한없이 잔인·패려(悖戾)하여 사람 죽이기에 기탄이 없었으니, 폐위 되어 쫓겨 날 적에는 마땅히 형벌을 받을 줄 알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강화로 건너갈 때 하늘도 알았던지 큰 바람이 일어 배가 거의 뒤집힐 지경으로 폐왕을 겁주었다.
간신히 교동에 당도해 강화현에 이르러 겁에 질린 폐왕은 장수와 군사들이 둘러선 가운데로 식은 땀을 흘리면서 땅바닥을 기어 들어갔다.
연산군이 한참 흉폭한 권력을 휘두를 때 한수의 이런 절귀(絶句)를 지어 주변의 비웃음을 샀다. 참으로 착각속의 군왕이었다.
時許群賢宴畵亭
때맞춰 어진이들과 정자에 잔치 열어
閑憑花酒覺昇平
꽃과 술을 즐기며 태평함을 알았네
何徒爭喜鴻私厚
어찌 은혜 입은 것만 좋아하랴
咸欲思忠獻以誠
모두가 충성하여 정성 바치게 하노라
고승 의상대사는 말했다. 『임금이 밝으면 비록 풀밭에 금을 긋고 성(城)이라해도, 백성들은 감히 넘지 못 할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밝지 못하면 장성이 제아무리 높아도, 재앙을 막아 내지 못 할것이다.』
연산군이 캄캄한 암흑에서 철없이 되뇌인 것같은 절귀에, 조신(趙伸)이라는 젊은이가 차운(次韻)하여 이렇게 지었다.
撤人廬舍摠爲亭
정자 짓느라 남의 집 헐고
採却靑紅作運平
여자들 뺏아 운평 만들었네
誅盡元勳屠諫輔
원훈 간관(諫官) 다 죽이고
只留早帽表忠誠
내시들만 남겨 충성하게 했네.
강화도 부처 두달 만인 11월 6일 연산군은 죽었다.
그가 숨을 모우며 남긴 말에 비로소 인간적인 냄새가 풍겼지만 백성들은 웃었다.
“신씨(왕비)가 보고 싶다.”
왕자 취급으로 장례가 치러진 연산군 시신을 오늘날의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묻었다. 배가 다른 아우 중종은 도승지 이자화(李自華)를 묘지에 보내 이런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했다.
『…신하에게 추대 되어 피할 수없이 이지경이 됐으니, 나의 회포가 어찌 풀리리오! 끝까지 서로 우애있게 지내 뜻을 풀고자 했는데, 병들어 돌아갔으니 하늘은 어찌 그리 참혹한가! 세월이 흘러 추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도다.
사람을 보내 제수를 드리고 삼가 심정을 고하니, 극히 박한 제물이오나 나의 작은 정성을 흠향하기 바라오!』
정연가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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