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72
(주)하동신문
연산군4년(1498) 7월, 무오사화를 일으켜 신진 소장파 신하들 씨를 말려 버리려했던 연산군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나간 조위(曺偉)를, 돌아오는 길 압록강변에서 조선땅에 발을 디디는 즉시, 묻고 따질 것없이목을 베어버리라며 금부도사를 서둘러 보냈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집을 편찬한 조위가「조 의제문(弔義帝文)」을 문집 맨 앞에 실은 게 그가 영문 모르게 죽어야 할 죄였다.
이는 성종(成宗)의 총애가 깊던 조위를 손톱 밑 가시 처럼 여긴 유자광(柳子光)이, 연산군을 부추겨 조위를 없애 버리려는 흉계에서 비롯 된 일이었다.
전과가 화려한 유자광은 독사 혀 놀리듯 연산군 앞에서 날름 거렸다.
“「조의제문」을 첫 머리에 실은 것은 자못 의미가 큰 것입니다”
이를테면 글을 쓴 김종직과 그 글을 문집 맨 첫머리에 실은 조위는 한 통속이라는 극히 유추 해석적 간악한 모함이었다.
조위의 본관은 창녕, 아버지는 울진현령 조계문(曺繼文)이었고, 전 영의정 조석문(曺錫文)의 조카였으며, 조선 성리학의 조종(祖宗) 김종직의 처남으로 고향은 충청도 금산이었다.
일곱 살때 벌써 시를 지을 만큼 재주가 넘치던 조위를 숙부 조석문이 불러 자기 집에 머물며 글을 읽게하였다. 21세 되던 해 문과에 올라 첫 벼슬로 승문원정자를 받았고, 이어 예문관검열이 되니, 성종은 그의 재능을 아껴 사가독서(賜暇讀書)로 학문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이어 여러 현직(顯職)을 거친 뒤 어머니 봉양을 위해 외직을 자청하니, 성종은 그를 특별히 한 계급을 더 올려 고향 가까운 함양군수로 보냈다.
재능이 뛰어나고 학식이 넓으며 시와 문장이 맑은 조위를 성종이 극진히 우대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우러러 봤다.
왕은 해마다 해가 바뀔 쯤에는 조위에게 시를 지어 올리게하여 음미하고는, 흡족하다는 표시로 그의 부모에게 곡식을 내려 주기도하였다. 함양 군수 시절 어머니 상을 당하니 성종은 특별히 부조금을 보내 위로했다. 임금이 지방관 상사(喪事)에 부조금을 보내는 일은 고금에 없던 일이었다.
조위가 김종직의 시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일도 사실은 성종이 시킨 일이었다. 조위는 내직에 올라와 도승지·호조참판·충청도관찰사 등 고위직을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귀로 요동에서, 자다가 홍두깨 맞는 꼴의 흉문(凶聞)을 들었던 것이다.
조위에게는 재주가 넘치는 서제(庶弟) 조신(曺伸)이 있었다.
형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 보고자 그는 요동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급박한 지경에 빠진 조신은 「어떻게 형을 살릴 길이 없을까」하는 생각에서 그곳의 이름난 점쟁이를 찾았다.
조신이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점쟁이는 말없이 두 글귀의 시를 써 주는 것이었다.
千層浪裡飜身出(천층랑리번신출)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을 뛰쳐 나와
也須巖下宿三宵(야수암하숙삼소)
응당 바위 밑에서 세 밤을 자리라
조신이 형 조위에게 달려가 말했다.
“첫 글귀를 풀어 보면 화를 면할 것도 같은데, 아래 글귀는 도저히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형제는 서로 마주 앉아 하염없이 슬피 울었다. 압록강변에 다달아 건너편 조선땅을 바라보니, 강가에 금부도사들이 늘어서서 목을 칠 죄인을 기다리는 형상이 보였다.
둘은 놀라 얼굴빛을 잃고 다시 목 놓아 울다가, 조위는 죽음을 앞두고 이미 각오를 한 듯 담담해졌다.
이윽고 강을 건넜는데 형리들은 조위의 목을 베지 않았다.
정승 이극균(李克均)이 잡아 문초하여 따져 보자는 것으로 목숨을 잇게 했으니, 점쟁이가 써 준 글귀 첫 구절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마침내 조위는 추달 끝에 곤장을 맞고 전라도 순천으로 귀양 갔다.
귀양살이 5년 만인 연산군 9년(1503) 조위는 병들어 숨져 고향 금산에 뭍혔다.
이듬해 갑자사화가 벌어지니 그 화가 저승의 조위에게까지 미쳤다.
연산군은 조위의 무덤을 파 이제 막 부패가 시작된 시신의 목을 베고 송장을 꺼내 무덤 앞 바위 밑에 두게했다.
사흘 뒤 조위의 시신을 거두어 묻은 조신은, 요동 점쟁이의 두 번째 글귀를 비로소 깨닫고 무릅을 치며 괴이하게 여겼다.
출신이 흐렸던 조신은 역관으로 출세, 새 세상 중종 때 명나라에 일곱 번, 일본에 세차례나 다녀와 멀리 안남국까지 이름이 알려진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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