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78
사마광(司馬光)이 역사서 <자치통감(自治通鑑)>을 쓰고, 책 이름에 거울 감(鑑)자를 붙힌 까닭은 「역사를 거울 삼으라」는 뜻이었다.
공명정대한 의지로 바른 정치를 위해 사연(私緣)을 배척하고 심지어 목숨을 걸고 저항한 선현들 모습을 실록을 통해 보고,「우리 조상들 가운데 이런 분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 나라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권좌(權座)에 앉아 국기(國紀)를 흔들어 백성들 눈에 피눈물 흘리게하고 줄줄이 묶여 들어가는 얼굴 두꺼운 자들은, 아마 역사 공부를 소홀이하여 경륜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연산군 말년 간신 임사홍(任士洪)의 모함을 받아 갑자사화 때 죽음을 당한 주계군(朱溪君) 이심원(李深源)은 태종 이방원의 현손으로, 효령대군의 증손, 보성군(寶城君) 이합(李합)의 손자, 아버지는 평성군(枰城君) 이위(李위)였다. 그는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밝아 성품이 방정하였고 글 읽기를 즐겨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문학으로 이름을 떨쳐 선비들이 다투어 그를 따랐다. 사서오경(四書五經)에 통달, 25세때 과거에 올라 명선대부(明善大夫)로 승진, 임금 성종에게 다섯 번 글을 올려 정치의 도(道)를 논했다.
그러나 이심원은 운이 나빴다고나 할까, 간신 임사홍을 탄핵하다가 할아버지와 성종의 미움을 받아 장단(長湍)·이천(伊川) 등지로 귀양을 다니는 불이익을 당하고 말았다. 얄궂게도 임사홍은 그의 고모부였다.
그는 한 울타리 안의 가까운 인척 임사홍을 자주 접하는 가운데 그의 간교함을 간파, 「임사홍이 진심으로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고 다른 마음을 가졌다」고 논박하였는데, 그의 할아버지가 사위 편을 들고 성종 또한 임사홍과 사돈관계라 이심원은 힘이 모자랐던 것이다. 실의에 빠진 이심원은 이런 시를 지어 마음을 달랬다.
一犁春雨杏花殘
농사철 봄비에 살구꽃은 떨어졌는데
處處人耕白水間
곳곳에 사람들은 흰 물 사이에 논을 가네
獨立蒼茫江海上
나 홀로 아득한 강 위에 섰으니
不勝초장望三山
슬프고 서운함 못이겨 먼산을 바라 보노라
또 운계사(雲溪寺)를 찾아보고 읊은 이런 시도 있다.
樹陰濃淡石磐陀
나무 그늘 길고 짙은데 돌은 울룩 불룩
一逕영廻透澗阿
한가닥 길은 빙빙 돌아 물 언덕을 뚫었네
陣陣暗香通鼻觀
간간히 그윽한 향기 코를 스치니
遙知林下有殘花
멀리서도 숲속에 남은 꽃 있음을 알겠네
이심원은 성종에게 「병든 부모님을 한번 찾아 뵙겠다」는 간절한 글로 성종의 마음을 울려 귀양에서 풀려났다.
성종1 8년(1487) 이심원은 종친과(宗親科)에 장원으로 급제, 종친부 2품직인 군(君)에 봉해졌다. 그는 다시 고모부 임사홍의 간사함을 구체적으로 들쳐 논박했다.
이번에는 성종도 어쩔 수없어 임사홍을 외방으로 내 쫓아 귀양을 살게하였다.
그러나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이 등극하니, 임사홍이 봄을 맞은 뱀마냥 독기를 품고 귀양에서 풀려, 연산군의 가장 관심사인 「폐비 윤씨 사건」을 들춰 갑자사화라는 핵폭탄을 터트렸다.
임사홍의 눈에 거슬린 대소신료들이 몰죽음을 당하는데, 이심원도 걸려들고 말았다. 죄목은「종친으로 폐비 죽음 방관」이었다.
생애 51세, 이심원의 아들 유녕(幼寧)은 재능이 높아 이조정랑(인사 책임관)에 올랐다가 아우 유반(幼槃)과 함께 죽었고, 또 한 아우 유정(幼靖)과 유녕의 아들 돈복(敦복)은 나이 어려 죽음은 면해, 살아 남은 어머니와 형수들과 뿔뿔이 헤어진 채 남의 집 종으로 분배되어 집안이 문을 닫아 버렸다.
이심원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의 아들 이유녕은 재주와 학식이 넘쳐 젊은 나이에 조정 신료들이 모두 바라보는 현직(顯職) 이조정랑에 기용 되었다가 죄없이 목숨을 잃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비참했던 그의 죽음을 챙기는데 모두 소홀하여, 확실한 나이가 전해지질 않으나 30대 초반에 저승 식구가 돼버린 것으로 짐작된다.
세상이 뒤집혀 중종이 등극하고 새 세상이 열리니,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이 이심원을 챙겼다. 그는 중종에게 아뢰었다.
“임사홍은 이심원의 고모부인데 심원은 분연히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성종에게 임사홍의 간사함을 진술했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중종은 이심원의 충절을 기려 흥록대부로 증직하고 정문을 세우게했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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