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77
역사책을 뒤적이다가 참으로 기가 막힌다고 생각하는 일들 가운데 하나가, 사람 같잖은 임금을 만나 아깝게 목숨을 앗긴 인재들의 비참한 모습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특히 악군(惡君) 연산군치하에서 화를 입은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연산군10년(1504) 윤4월 15일. 전 직제학 정성근(鄭誠謹)이 갑자사화에 얽혀, 김취인·조지서 등과 함께 군기시 앞에서 처형당해 잘린 머리가 장대 끝에 매달려 세워졌다.
백성들로 하여금「봐라! 대역죄인은 이렇게 된다」라고 겁을 주는, 이른바 효수(梟首)형에 처해진 것이었다.
정성근의 본관은 진주, 세종으로부터「청직(淸直)한 인물」로 칭송받고 세조때 지중추원사에 이르렀던 정척(鄭陟)의 아들이다.
그는 김종직문하에서 배워 성종때 문과에 올라 벼슬길에 들어섰다.
정성근은 효성이 지극하여 관직에 있을때도 초하루와 보름에는 열일을 재껴 놓고 반드시 부모묘소를 찾아 제수를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는데, 종신토록 행한 「부모 봉양」이 여막(廬幕)생활 때와 같았다.
정성근은 천성이 곧고 굳세어 흔들림이 없었다. 홍문관전한(典翰) 때 대마도 사신으로 나갔는데, 여가(餘暇)에 일행이 매림사(梅林寺)절간 구경을 가자했다. 그러나 그는
“너희들이나 가라! 나는 이미 앉아서 모두 상상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절과 무엇이 다르랴!” 하고 움직이질 않았고, 대마도주 거처에 이르렀을때 도주가 문밖에 나와 맞이하질 않았다.
그는 문밖 의자에 걸터 앉아 통역을 시켜 대마도주로 하여금 기어이 조선의 왕명을 받드는 의식을 차리게 강권, 도주를 굴복시켜 사신의 체통을 지켰다.
융숭한 대접 뒤에, 도주가 그림부채·패도(佩刀)·후추·향 등을 챙겨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정성근은 일행이 받은 모든 물건들을 거두어 도주에게 되돌려 보내 버렸다.
뒤에 대마도주는 그 물건들을 꼭 전하고자 특사를 보내와, 왕으로 하여금 정성근일행에게 나눠 주길 청했다.
임금이 정성근을 불러 받으라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하였다.
“신이 그곳에 가서 받지 않았다가 여기서 받으면 앞뒤가 다르게 되니 받지 않겠습니다”.
왕도 어쩔 수없어 특사를 물먹이고 말았다. 이처럼 그의 한평생은 꼿꼿하고 깔끔했다.
암울한 연산군시대 정성근 같은 청직한 신하는 설곳이 없어졌다.
그는 혼탁한 정치판을 개탄한 나머지 홀로 시름에 잠겨 밤중에 이런 노래를 불렀다.
以我思子心
나는 임 생각하는데
子無我心似
임은 내 마음 몰라 주네
子心苟可似
임의 생각이 진실이라면
天下寧有是
세상이 어찌 이럴 수있으리오
思之縱無能
비록 생각 않을 지라도
無嫉猶可己
미워하지만 않으면 그만이로다
桃李媚恩光
복사꽃 오얏꽃 봄바람에 미쳐
競此色婉娩
아름다운 빛깔 서로 다투네
老菊終亦花
늙은 국화도 꽃이야 피련만
寂歷誰省玩
외롭고 쓸쓸하니 누가 보려나
霜風掃奔空
서리바람이 풀잎을 쓸때
孤芳托秋苑
외로운 향기 가을뜰이 얻으리.
정성근의 이 노래를 김안로(金安老)가 가만히 얻어 문자화했던 시였는데, 참으로 절묘하게 연산군시대를 꼬집은 절귀였다.
처음의「임」은 패악한 군주 연산군을 말함이라, 자기 진심을 몰라주는 연산군이 원망스럽지만, 미워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심경을 나타냈었다.
둘째의「복사꽃 오얏꽃」은 폭군을 싸고도는 간신들을 뜻했고,「국화」는 자신을 말함이었으며, 「서리바람이 풀잎을 쓸 때」는 이미 말기로 치닫는 연산군의 종말을 뜻함이었다.
정성근은 성종때 이미 청백리에 녹선 됐었다.
성종이 죽자 3년간 수묘관(守墓官)으로 봉직한 뒤 무관직인 행 호군(護軍)으로 밀려 났다가 화를 입었다.
폭군 밑에 벼슬하기를 말렸던 그의 아들 정주신(鄭舟臣)은 관직이 승문원박사였는데, 아버지 죽음에 충격을 받고 단식 끝에 죽었다. 나이 33세. 정주신의 아우 매신(梅臣)과 그의 아들 원린(元麟)·원기(元麒), 원린의 아들 효성(孝成)이 모두 특출한 효행으로 각기 정문(旌門)이 세워지니, 모두가 정성근의 핏줄임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조선 왕조 뒷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 뒷 이야기> 79 (0) | 2018.09.25 |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8 (0) | 2018.09.21 |
조선왕조 뒷 이야기> (0) | 2018.09.18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5 (0) | 2018.09.17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4 (0) | 2018.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