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96
중종의 장남으로 장경왕후 윤씨 소생 이호(李岵)가 25년간 세자자리에 머물다가, 1544년 11월 왕위에 오르니 나이 30세였다. 그는 태어난지 엿새만에 그만 어머니 장경왕후를 산후병으로 잃었었다.
중종이 처음 맞았다가 반정공신들의 비토로 쫓겨난 단경왕후에 이어 장경왕후를 거쳐 세 번째 맞은 왕후가 유명한 문정(文定)왕후, 장경·문정 두 왕후는 친정이 같은 파평윤씨로 가까운 일가였다. 장경왕후는 좌찬성을 지낸 윤임(尹任)의 딸이었고, 문정왕후는 윤임과 10촌사이인 윤지임(尹之任)의 딸이었으니, 윤임과 윤지임이 함께 중종임금의 국구가 되고 보니, 이게 바로 커다란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문정왕후 됨됨이를 요샛말로 풀어 써 본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세 번째 왕비로 1501년 10월 22일 태어나 17세 나이에 왕비가 됐다. 그 무렵 조정은 치열한 권력 다툼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때 문정왕후는 아직 서툰데다 주변에서 그녀를 돌봐 줄만한 버팀목이 없었다. 그녀는 오직 임금 중종과 전 왕후가 낳은 원자 호(인종)를 믿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때 원자는 나이 겨우 3살 젖먹이었으니, 그녀에게는 원자를 보살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었다. 이런 환경은 그녀의 입지를 지켜 줄 빌미가 되기도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사정은 달라졌다. 연달아 4명의 딸을 낳은 뒤 아들 환(명종)을 낳자 그녀는 책봉 세자인 호(인종)를 싫어하는 마음이 스멀 스멀 솟았다.
그녀가 자기 친 아들을 장차 왕위에 올려 놓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는데는 그리 많은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문정왕후는 친정 남동생들인 윤원로(尹元老)와 윤원형(尹元衡)을 시켜 은밀히 음모를 꾸몄다.
이리하여 조정은 세자의 외숙 윤임과, 새로 태어난 어린 왕자의 외숙 윤원로·원형 형제가 합친 세력 다툼이 노골화 되기 시작했고, 결국 윤임 일파를「대윤(大尹)」, 윤원로 형제 일파를 「소윤(小尹)」으로 하는 정파가 형성 되기에 이르렀다.
한때 소윤일파의 음모가 들어나 코너에 몰린 문정왕후가 폐위될 위기를 맞기도했으나 겨우 모면한 틈인, 1544년 11월 중종이 비극의 씨앗을 남긴채 죽고, 몸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세자가 즉위하니 이가 곧 인종이었는데, 그 와중에 가장 재미를 본 인물이 곧 대비(大妃)자리를 꿰찬 문정왕후였다.
효성이 지극한 인종은 자나 깨나 대비에 오른 계모 문정왕후를 보살피며 받들어야했다. 인종의 인물됨을 살펴 본다.
『그는 원인 모를 병으로 몸져 누워 시름 시름 앓더니 불과 8개월 보름 남짓 왕의 신분을 띄고 있다가, 후사도 두지 못한 채 1545년 7월 1일 눈을 감고 말았다.
누린 나이 31세. 그는 너그러운 성품에 효성이 지극했고 행동이 방정하여 선비의 면모를 갖춘 인물이었다. 이복 아우와 우애도 깊었고 극히 총명하여 여덟살 때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했다.
그러나 그의 도가 넘친 효성과 겸손, 너그러움은 표독스럽기 짝이 없었던 계모 문정왕후의 야욕을 길러 주는 결과를 낳았고, 나아가서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 꼴이 되고 말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인종 즉위와 함께 문정왕후의 친정 세력인 소윤일파가 밀려 나고, 윤임 등 대윤세력이 조정을 장악하기는 했으나, 대비 문정왕후는 탄탄해진 지위를 십분 활용, 본색을 들어내 노골적으로 인종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는 인종의 성정을 잘 아는 그녀의 고단수 계책이었다. 그녀는 숨만 붙은 듯한 인종에게 턱 없는 악을 써 인종을 못살게 굴었다. 대윤 세력에 밀려 자기 소생 아들이 필경 화를 당할 것 아닌가 하는 지레 짐작에서, 순진무구한 인종의 심장을 찔러댔다.
“우리 모자(母子-왕후와 명종)를 언제 죽일 것이냐”
문정왕후는 틈나는 대로 인종의 발바닥을 긁으며 심사를 괴롭혔으나 인종은 문정왕후의 발작이 자신이 대비를 잘못 모신 탓으로 돌려 항상 마음 아파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결국 인종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1545년 7월 1일 세상을 떴다. 세상에 나온지 엿새만에 어머니를 잃고 계모 품안에서 자랐는데, 불행하게도 몸이 허약했다. 나이 31세,그가 왕위를 누린 기간은 겨우 8개월 보름,
인종의 뒤를 이어 이복 아우 명종이 즉위하니, 문장왕후의 오랜 꿈이 드디어 이뤄진 셈이다. 그때 명종의 나이 12세,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통째로 거머 쥐었다.
그녀는 곧 인종의 외숙 윤임 일파를 쓸어내기 위해 피 비린내 풍기는 숙청을 시작하니 이른바 을사사화(乙巳士禍)였다. 윤임을 비롯한 대윤 일파는 물론 대윤세력이 인종의 후임 으로 추대하려했다는 성종의 손자 계림군까지 모조리 역모죄로 다스려 죽이니, 이후 5~6년 동안 계속된 피의 숙청으로 죽어 나간 벼슬아치들이 무려 100여명에 이르렀다. 권력의 뒷맛은 어떻을까?
정 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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