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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94

by 까망잉크 2018. 10. 29.

<조선왕조 뒷 이야기>94

귀양처에서 도망쳐 훗날 대신으로 성공, 관직이 일품 우찬성에 이르렀던 이장곤(李長坤)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겪은 풍운아였다.



본관이 벽진. 아버지는 참군(參軍) 이승언(李承彦). 김굉필문하에서 배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성종 때 재수 없는 흉물 유자광이, 그를 문무겸전의 인물로 천거한 일이 꺼림직했으니, 이는 선비의 몰골과는 거리가 먼 느낌의 장대한 그의 기골 때문이었다.


생원시에 장원하고 연산군8년(1502) 문과에 올라 곧 홍문관교리에 이르렀다가 운명의 갑자사화를 만나 거제도로 유배 당한 이장곤은, 말기증상의 광군(狂君) 연산이, 장수기질의 그를 의심, 틈을 노려 곧 목을 따 버리려하자, 어느날 그만 유배지 거제를 탈출, 무조건 북쪽으로 달려 빼 도망쳤다. 


쉴새 없이 밤낮으로 2000리 길을 걸어 밟은 땅이 함경도 함흥. 그는 너무 지쳐 길가 느티나무 그늘에 기진맥진 쓸어져 잠이 들었다가, 잠결에 옆에서 수군거리는 관아 순라군(巡邏軍)들의 말을 통해, 자신이「현상(懸賞)붙은 긴급 수배범」임을 알게 됐다. 


순라군들은 뻗어 있는 이장곤을 「여러 사람 팔자를 고칠 현상 붙은 사내」가 아닌가 의심까지 하더니,「얼굴이 우락부락하고 발이 크니 선비 타입이 아니다」라는 서툰 수사 촉감으로, 그를 지옥 문턱에서 끌어냈다. 


선비 답잖은 그 몸매가 그의 목숨을 살린 기묘한 경우였다. 만사에 관심 없는 듯 억지 코까지 골면서 늘어져 있으니, 막다른 골목의 미물이 죽은 시늉으로 몸을 사리는 꼴 그대로였다.


자리를 뜬 순라군들 모습이 멀어지자 이장곤은 반대 방향으로 줄행낭, 목이 말라 어느 마을 어귀 우물에서 물을 긷는 댕기머리 처녀에게 마실 물을 청했다. 처녀는 말없이 바가지에 물을 뜨고 우물가에 늘어진 버들 잎을 주루룩 훑어 띄워 고개는 돌린 채 말없이 내 밀었다. 버들잎을 후후 불어 밀치며 한바가지 물을 들이킨 이장곤은, 그 길로 기특하기 짝이 없는 처녀 뒤를 밟아 가, 그 집 주인을 반 우격다짐으로 설득한 끝에 처녀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밤을 지새는데 그만 병이 났다. 2000리 길 여독(旅毒)이 몸을 덮친 것이었다. 
며칠 간 물 떠준 처녀의 보살핌으로 생기는 되찾았으나, 달리 갈 곳이 없는 이장곤은,「이 집에 그냥 눌러 앉을까」하는 욕심에서 집안을 살폈더니, 여기 저기 쌓인 버들고리짝, 마감이 덜 된 곡식 까부는 키 등이 널려있는 것으로 봐, 이 집이 곧 천한 백정(白丁) 집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장곤은 세상을 피하는데는 안성마춤이라 여긴 끝에 마침내 그 집 사위가 되니, 양반 벼슬아치가 세상 잘못 만나 백정 사위로 무너진 것이었다.


고리짝(柳器) 전문가 이장곤의 장인 내외는, 하나 뿐인 외동딸로 후계자 삼을 데릴사위감을 기대 했다가, 아무 쓰잘데 없는 사내에게 그만 귀한 딸을 빼앗겼다며, 솜씨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 볼 수없는 사위를, 대 놓고「밥만 축내는 구멍난 반낭(飯囊-밥 푸대)」취급했다. 그러나 딸은「뭔가 달라 보이는」건강 만점인 이장곤을 극진히 챙겼다.


그런 어느날 이장곤의 귀에 등너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이상한 소문」이 닿았다. 
그는 곧 아내에게 한번 알아보게 하였다. 
영문을 알턱 없는 아내가 듣고 돌아와 옮기는 말을 맞춰 보니,「새 임금이 앉았다」였고, 덧붙혀「도망간 이교리를 찾는다」는 말까지 있었다. 이장곤은 깜짝 놀라 사실 확인을 해야했다.


마침 장인이 만든 유기장을 함흥 부중(府中)에 갖다 바쳐야 하는 날이 왔다. 두근 거리는 가슴의 이장곤은 때를 만난 듯 이번 유기장 삭납(朔納)은 자기가 가겠다고 장인을 설득했다. 서툴러서 안된다는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장곤은, 지게 가득 고리짝을 엉성하게 짊어진 채 함흥부중으로 들어갔다. 


이장곤을 잘 아는 처지의 무관 출신 함흥고을 수령이 이장곤을 보자, 기겁 할 듯 놀라 황급히 뜰아래로 내달아 그의 손을 잡아 윗자리로 모시고는 말했다.
“이 어찌된 일이오? 어디에 숨어 이 모양을 하시게 되었오?”
“죄인 된 몸이 백정 집에 몸을 숨겨 목숨을 잇다가 이렇게 되었오!”
수령은 이장곤에게 새 의관을 입히고 주안상을 대접하며, 중종반정 전모를 밝히고, 그를 급히 찾는 통문이 팔도에 내려졌음을 알렸다. 


이튿날 이장곤의 처가집은, 함흥 수령은 물론 대거 몰려 든 인근 고을 수령들로 아수라장을 이뤘고, 함경감사는 이장곤 내외가 서울까지 타고 갈 가마까지 보내오니, 그를 수발하던 백정의 딸은「가마 탄 백정년」으로 둔갑, 세상을 뒤집었다. 


이리하여 새 임금 중종은 이장곤을 본래 벼슬 교리에 기용하고, 백정의 딸을「정실 부인」으로 삼게했다. 뒤에 이장곤은 종1품 우찬성으로 병조판서를 겸한 대신 직위에 이르렀다.  
어지럽던 정치판을 대변한 한가닥 희극이였다.                                                  


정  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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