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104
외교 일선에서의 성(性)추문, 「재수 없으면?」 세상이 시끄럽다. 조선시대 명나라와의 외교 마당에서 한 남자의 음욕(陰慾)이 「의기(義氣)」 로 변해, 나라를 뒤흔든 「국제적 보은」으로 맺어진 내막을 들춰본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 이후 역대 왕들은, 망신스럽기 짝이 없는 고민거리를 대를 이어 물려받아 기어이 풀어야 할 숙제로 삼았다. 곧 명나라 <대명회전(大明會典)> 에 『조선 태조 이성계는 고려 권신 이인임(李仁任) 후손이다』라는 기록이 그것.
이인임은 본관이 전주가 아닌 성주(星州), 그는 권력을 쥐고 까불다가 이성계의 반격으로 패망한 간신이라, 이씨왕조 입장에서는 이만 저만 모욕스런 기록이 아니었다. 까닭은 지면 관계로 설명을 생략한다.
등극 직후 이 사실을 안 태조 이성계는 입맛이 썼다. 이후 역대 조선 조정은 이 문제를 풀려고 수차례 특사를 보내 고쳐 달라했으나 콧대 높은 명나라는 「별것 아니다」 며 들은 척도 않했다.
명종때 중국말에 능통한 역관 홍순언(洪純彦)은 젊은 시절 신분은 별로였으나 의기가 높았다.
언젠가 그가 사신(使臣) 통역관으로 북경으로 가다가 통주(通州)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심심풀이로 기생술집을 찾은 홍순언은, 마음 가는 한 여인에게 끌려 함께 밤을 새우기로 했는데, 여인의 차림새가 우수 (憂愁) 서린 흰옷 차림이라 「흰 소복 까닭」 을 물었다.
여인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남쪽 절강(浙江)이 고향인데 북경에 살던 부모가 갑자기 염병으로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 시신을 고향으로 옮기는데 쓸 경비를 마련하고자 오늘 술집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고 울먹이는게 아닌가.
홍순언은 앞뒤 생각질 않고 지녔던 공금(公金)까지 모조리 털어 여인에게 선뜻 안겨 주고는, 「엉덩이를 만지기는 커녕 허리를 ‘툭’ 치지도 않은채」 여인을 고이 돌려 보냈다. 그는 곧 소환돼 공금횡령죄로 옥에 갇히고 말았다.
동행했던 사신일행은 홍순언을 「재수없이 걸렸다」 며 탓하지는 않았으나, 「그런 때 공금을 써도 좋다」 는 규정이 없었기에, 그를 그냥 둘 수없었던 것이다. 물론 왕권시대라 「대국민 사과」 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몇 년 뒤 세월은 흘렀는데 명나라 외교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조선에서 사신이 갈 때 마다 「역관 홍순언이 왔느냐?」 고 물으며 홍순언을 「보배 같은 인물」 여기는 눈치였다.
선조17년(1584) 왕은 묵은 숙제를 풀 요량으로 이른바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를 또한번 명나라에 보내, 왕가의 종통을 바로 잡아 보기로 작정, 특별히 엄명까지 내려 통역관들에게 겁을 먹였다.
“그동안 일을 성사 시키지 못한 데는 명나라 설득에 실패한 통역관들 죄가 크다. 이번에도 못이루면 마땅히 수석통역관 목을 베겠다!”
명을 받은 통역관들은 안절부절 궁리 끝에, 자기들이 돈을 모아 홍순언이 갚아야 할 공금을 대신 갚고, 그를 풀어내 주청사 통역관으로 삼았다. 5월 3일 서울을 출발한 대표 사신은 정사(正使) 황정욱(黃廷彧). 이때 명나라 외교를 책임진 예부시랑(禮部侍郞)은 석성(石星). 이번 조선 사신 일행에 홍순언도 역관으로 온다는 통보를 미리 받은 석성은, 정사 황정욱 보다 역관 홍순언을 먼저 찾았다. 까닭은 참으로 묘했다.
지난날 통주에서 하룻밤 「성 매수」 감으로 노렸던 그 여인이 곧 예부시랑 석성의 계실(繼室)이 아닌가!. 석성은 홍순언을 보더니, 「당신은 참으로 천하의 의사(義士)입니다」 하고, 부인을 불러 홍순언 앞에 꿇려 큰절을 올리게했다. 홍순언이 굳이 절 받기를 마다했으나 석성은. 반드시 올려야 할 절 이라며,
“이것은 보은배(報恩拜)니 당신은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했다.
이리하여 석성의 특별 조치로, 잘못 기록 됐던 <대명회전>의 이씨왕조 세계(世系)는 바로 잡혔다. 귀국 길의 홍순언에게 석성 부인은 비단 각 10필씩을 담은 상자 10개를 주며 기꺼이 가져가기를 청했다.
“이것은 내가 손으로 짜서 공(公)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홍순언이 기어이 사양하고 돌아 오다가 압록강에 이르렀더니 벌써 비단 상자가 국경에 도착해 있었고, 비단 끝 마다에는「報恩」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선조17년 11월 1일. 종계변무주청사 황정욱은 개정된 <대명회전> 복사본을 가지고 도착하였다. 선조는 뛸 듯이 기뻤다.
대임(大任)을 이루는데 참여한 신하들을 광국(光國)공신으로 책록하니, 정사 황정욱은 1등에, 홍순언은 역관 신분이라 2등에 들었다.
오죽했으면 나라가 빛을 찾았다는 뜻의「광국」이라 했을까. 선조는 홍순언을 별도로 챙겨 당릉군(唐陵君)으로 봉군했고, 그의 손자 홍효손(洪孝孫)을 숙천부사로 발령하였다.
사람들은 홍순언이 사는 마을을 보은단동(報恩段洞)이라 불렀다.
정 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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