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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 101 죄와 벌

by 까망잉크 2018. 11. 22.


<조선왕조 뒷 이야기> 101 죄와 벌
(주)하동신문
속설에 『죄지어 남주나』 라는 말이있다. 사람들은 흉악 망측한 일을 당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던가!』 하고 탄식한다. 김수환 추기경 말마따나 『‘무엇이 될까’ 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야』 하는데, 무엇이 되려는 욕심에만 가려 저마다 죄를 저지른다.
모두가 날조된 것으로 보던 「양재역 벽서사건」은 문정왕후·윤원형 남매가 벌인 살인굿판 불씨였다. 양재역에 붙었더라며, 왕후를 비방한 글이 적인 요상한 종이 쪽지를 왕후 코밑에 들이 밀어, 대신들을 무수히 죽이거나 귀양 보내 버리고 그 빈자리를 차지, 벼락 출세한 정언각(鄭彦慤)이, 한성판윤을 거쳐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거들먹거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말에서 떨어져 죽으니, 사람들은 『하늘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며 쑤군됐다. 요즘의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한 경기도지사가 교통사고로 죽은 꼴이었다. 선조3년 정언각의 관작도 싸그리 지워졌다.
윤원형의 애첩 정난정(鄭蘭貞)은 본관이 초계, 부총관을 거쳐 삼척부사를 지낸 정윤겸(鄭允謙)이, 관비(官婢)를 집적거려 얼치기로 나온 요물이다. 
색기(色氣) 만발한 몸뚱아리 하나를 잘 굴려 윤가(尹哥)를 만나, 자식 없던 윤가의 본실을 독살하고 빈 안방을 차지, 정경부인 첩지까지 받은, 사람 껍질을 둘러 쓴 불여우였다.
윤가가 이조판서로 백관의 직위를 밀가루 반죽하듯 주무를 때 일이다. 
간밤에 들이킨 술이 아직 덜 깬 윤가가 흐늘거리며 문밖을 나서는데 난정이 꼬리쳤다. 『대감! ‘고치(누에 고치)’를 잊지 마시오 ‘고치!’』
윤가는 희멀건 눈빛으로 『알았느니라!』 중얼 대고 가마에 올랐다. 
윤가는 이조(吏曹)에 닿기가 바쁘게 낭관(郎官)을 불러 대뜸 벼슬을 줄 인물 명단을 받아 적으라더니, 꾸벅 꾸벅 졸며 우물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이름을 대질 못했다. 
낭관이 답답하여 재촉하니, 윤가는 비로소 생각난 듯 『참봉에 고치, 고치…』 하고는 말문을 닫고 잠에 취해 뻗어 버렸다. 어떤 시골 농투성이가 참봉 벼슬이 하고싶어 정난정에게 누에고치 수백근을 실어다 바치고 능참봉(陵參奉) 자릴 부탁했더니, 윤가는 술떡이 돼 사람 이름은 잊고 정난정이 꼽씻었던 「고치」 만 어렴풋이 생각 났던 것이다. 
낭관은 알았다는 듯 널리 「고치」 라는 사람을 찾았다. 마침 어느 시골에 『고치(高致)』 이름의 사내가 있어 막무가내 참봉 자리를 안기니, 사내는 아무 영문 모른 채 「이름」 덕으로 벼락감투를 썼고, 한해 농사 지은 누에 고치를 몽땅 난정에게 갖다 바친 자는 헛물만 켰다.
정난정은 딸을 중종의 손자며 현 임금(명종)의 조카 되는 왕손을 사위 삼았다. 혹시 왕통에 무슨 변고라도 생길라치면, 자기도 「임금 장모가 될 수도있다」 는 야망에, 더 나아가 「임금의 외할머니」 가 될지도 모른다는 「부처가 배꼽을  쥐고 웃을 꿈」 까지 꿨던 것이다.
명종1 8년(1563) 순회(順懷)세자가 열 세살 나이로 죽고 말았다. 명종은 말 할 것도 없고 손자를 떨군 문정왕후는 가슴에 녹쓴 대못이 박히는 고통을 겪었다. 『저지른 죄업』 을 안고 가듯, 두해 뒤인 명종20년 4월 6일, 왕후도 죽었다. 
누린 해 65년, 살 만큼 산 나이다. 이리하여 개국이후 최초로 임금자리가 적통에서 벗어나 옆길로 뻗게 되어, 명종의 뒤를 중종의 서7남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 차지하니 이가 곧 선조(宣祖)다.
선조는 정난정의 사위와 형제였으니, 까딱했으면 정난정이 임금 장모가 될 뻔도했다.
문정왕후가 염라대왕에게 끌려가자 세상은 돌변했고 임금 명종의 마음도 달라졌다. 
어느날 명종은 대신들에게 물었다.
『한나라 문제(文帝)가 박소(薄昭)를 왜 죽였소?』
박소는 왕실을 등에 업고 까불다가 처형 당해 버린 문제의 외삼촌이었다.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은 그때 백관의 최고봉 영의정이었다. 대사간 박순(朴淳)이 임금의 뜻을 순간적으로 갈파(喝破), 윤가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따질 것도 없었다. 명종은 윤가의 모든 관작을 벗겨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내 쫓아 버렸다. 다시 본바닥 천민으로 미끄러진 정난정은 오들 오들 떨면서 잘난? 남편의 뒤를 따르는데, 거리에서 백성들이 『죽일 년』, 『썩어 문드러 질 년놈』 이라 욕지거리를 퍼붓고, 돌팔매 질에 기왓장을 던지는 자, 활을 쏴 눈 깔을 빼 죽이려고 덤비는 백성도 있었다.
둘은 처음 경기도 교하(交河)에 숨어 벌벌 떨다가 깊숙이 황해도 강음으로 옮겼다. 
윤가의 본실 김씨 친정에서 난정의「정실(正室)독살」을 고발했다는 말을 바람결에 전해들은 정난정이, 품고 다니던 사약을 먼저 털어 넣고 죽자 한달 뒤 윤가도 독약을 마시고 난정의 무덤을 끌어 안은 채 검붉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즐거운 꽃놀이도 뒤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다』                                         
 
정  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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