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112
근래 미국의 어느 매체가 「세계 유명 여류 명사」를 꼽았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유일무이하게 조선 인종 때의 영의정 홍언필(洪彦弼)의 부인 송씨(宋氏)가 뽑혔다.
영의정의 딸로 영의정 남편에 영의정 어머니가 된 게 선정 이유였다. 요즘으로 치면 아버지가 국무총리였고, 남편이 국무총리였으며 아들이 또한 국무총리였던 셈이니 그럴만도했다.
송씨 부인은 중종 때 영의정 송질(宋질)의 세 딸 가운데 막내였다.
송질은 투기가 심한 부인 때문에 늘 걱정이었는데, 세 딸 마저 어머니를 닮아선지 성질들이 너무 강했다.
하루는 송정승이 참다 못해 시커먼 먹물 세 사발을 떠 놓고, 세 딸을 불러 욱박 질렀다.
“너희들은 네 어미를 닮아 질투가 그처럼 심하니, 시집 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이 약을 함께 마시고 죽는 게 낫다. 자 어서들 마시고 저 세상으로 꺼져 버려라!”
아버지의 막말이 떨어지자 위로 두 딸은 「다시는 투기하지 않겠다!」 며 싹싹 비는데, 막내는 주저하질 않고 약사발을 들어 마시려했다. 기가 막힌 송정승이 「너는 언니들 처럼 버릇 고칠 생각을 왜 못하느냐?」 고 다그치니, 막내 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소녀는 버릇 고칠 자신이 없어, 차라리 죽어 아버지걱정을 덜어드릴까 합니다!”
맹랑하기 그지 없는 대답을 들은 송정승은, 도리 없이 이튿날부터 막내 딸 기질을 누를 만한 당찬 신랑감을 찾기로했다.
그런 어느날 퇴청 길에 한 총각이 자기집 여종을 희롱하는 현장을 봤다. 송정승은 「뉘집 얘가 무례하게 남의 집 안뜰에 들어 왔느냐?」며 총각을 불러 세워 호통 쳤다.
그러나 총각은 오히려 당당하게 맞섰다.
“저도 사대부집 자식이오! 종을 잠깐 희롱했기로소니 그게 그리 꾸짖을 일입니까? 어른의 체면도 생각하셔야지요!”
송정승은 오히려 반격하는 총각의 기백이 보통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태도를 바꾼 송정승은 근엄을 풀고 말을 나눠 보니, 그 총각이 건너 마을 승지 홍형(洪泂)아들임을 알았다. 송정승은 곧 그를 사윗감으로 찍어 막내딸과 혼인 시켰다. 초레청에서 신랑을 본 종들이「아무개 종과 새기던 총각이다!」 며 수군거리니, 놀란 송정승 부인이 주먹을 흔들며 고함 질러 초례청을 흔들어 버렸다.
“어디 총각이 없어 종년과 사귀던 자를 사위라니! 혼례를 치우시오!”
그러나 때는 이미 혼례식이 끝날 무렵이었다. 송정승 부인의 고함 소리를 들은 신랑 홍언필은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허참! 독약 마시려던 처녀는 나도 신부감으론 싫소!”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서둘렀더니, 송정승이 빌다시피 애원, 신랑은 못이긴 체 신부집에서 밤을 새웠고, 투기 심한 장모는 딸을 신랑 방에 들여 보내질 않았다.
이튿날 아침 밥도 거른 채 집에 돌아온 홍언필은, 이후 처가에 일체 발걸음을 끊었다. 이미 딴데로 시집가긴 틀린 신부와 장모는 초조했다. 사위측이 굽혀 용서를 빌 줄 알았던 장모와 딸의 기대는 빗나갔다.
장모는 송정승에게 애원, 사람을 보내 신랑측에 「만나서 풀자」 했으나, 보낸 사람마다 죽도록 매만 두들겨 맞고 헛탕 쳤다했다. 이는 아무도 모르게 송정승이 사위와 짠 연극이었다.
송정승 부인과 딸이 미칠 지경에 빠진 채 3년이 지난 어느날, 신랑 홍언필이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송정승은 퇴궐하여 부인과 딸을 불러 크게 마음상한 일을 당한 것처럼 젖은 말로 푸념했다.
“오늘 과거급제자가 알려 졌는데 홍서방이 장원이었어! 나는 너무 반가와 치하하려 옆에 갔더니, 글쎄 홍서방이 모른 체 돌아서 버리더군!”
“아니? 저런…! 그럴 수가…!”
“생각해 보면 이게 모두 당신의 그 고약한 성미 때문이 아니겠오?”
두 내외의 모습을 지켜 본 딸 송씨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고, 이튿날 더욱 속상한 일은 풍악소리 요란한 장원 홍언필 축하행렬이 송정승 대문 앞을 지나는 광경이었다.
구경꾼 틈에 끼어 행렬을 살피며 눈물을 흘리던 모녀는, 송정승에게 애원하였다. 과거급제자는 선배 급제자가 부르면 인사를 올리는게 법도였다. 송정승은 아내와 딸의 소원을 들어 주는 셈인 양 홍언필을 안으로 불렀다. 모두가 송정승이 펼친 드라마.
이리하여 사위 홍언필을 맞은 부인 모녀는 사위이고 남편인 홍언필에게 「지난 날 잘못을 용서 바라며, 향후 투기하지 않기를 맹세한다」 며 손바닥이 닳도록 빌었다.
이리하여 성정을 확 바꾼 신부 송씨는, 남편 홍언필이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받들었고, 그의 아들 홍섬(洪暹)도 훌륭하게 자라 선조 때 영의정에 오르니, 그녀는 왕비도 서서 맞을 만큼 존대 받으며 90세가 넘도록 장수하였다.
정 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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