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창덕궁

by김세중Jan 24. 2023

정월 초사흗날 혹한을 무릅쓰고 창덕궁을 찾았다. 과연 맹추위 때문에 궁을 찾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산해서 좋았다. 어찌나 춥던지 사진 찍을 때 손을 꺼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지만! 

 

창덕궁은 두어 차례 온 기억이 있다. 30년쯤 전 기억이 난다. 직장에서 일본과 중국의 학자를 초청해서 학술대회를 열었는데 남는 시간에 관광을 위해 창덕궁을 찾았고 그때 같이 왔었다.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창덕궁 안에 고종황제가 탔던 승용차가 전시되어 있던 게 기억난다.

 

창덕궁은 정전인 인정전을 비롯해 동쪽의 선정전, 대조전과 서쪽의 구선원전, 규장각, 내의원 그리고 남동쪽의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등이 비교적 가까이 있고 북쪽 숲속에 후원이 있다. 후원은 창덕궁에 속해 있으면서도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하는 별도의 특별한 구역이다. 예약을 해야 하고 시간대별로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다녀야 한다. 

 

임란 이후 경복궁이 폐허가 되다시피하게 되자 조선조 임금들은 창덕궁에서 주로 지내며 정사를 펼쳤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더불이 조선의 양대 왕궁의 하나다. 오히려 경복궁보다 더 오랜 기간 조선의 정궁이었다. 경복궁보다 규모가 작고 오밀조밀하지만 경복궁에 없는 것이 있다. 후원이다. 후원은 산중에 자리한, 마치 별세계와 같은 곳이다. 서향각은 임금이 보는 서책이 보관된 곳이고 주합루는 임금이 책을 보는 곳이었다. 신하들을 맞기도 했고. 주합루 아래 연못 가 부용정은 작지만 참 예쁜 그림 같은 정자다.

 

후원에는 또 연경당이 있다. 장락문, 유인문, 정추문 등을 지나야 나타나는데 임금이 사는 집 같지 않고 그냥 사대부의 집처럼 보인다. 근처에 승재정이 있고 고개를 넘으면 관람정, 존덕정이 있다. 평지가 아니고 울룩불룩 경사진 곳에 여기 저기 정자가 서 있어 입체감이 환상적이다. 근처에 서 있는 불로문은 오로지 돌로 세워진 문으로 돌에 새겨진 '門老不'은 전서체다.

 

창덕궁에서 못 가본 데가 몇 있다. 낙선재 위의 상량정은 한눈에 무척 아름다운 건물임을 알 수 있는데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대조전은 지금 보수 공사 중이라 막혀 있었다. 후원 안 깊숙이 옥류천 권역은 겨울이라 개방을 않고 있어서 가지 못했고...

 

얼마 전 창덕궁 후원에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간혹 멧돼지가 나타나는 모양이다. 지금도 이러니 조선시대에 후원이 얼마나 깊은 산중이었는지 알만하다. 일제강점기에 후원의 이름이 비원(秘苑)으로 바뀌었단다. 건너편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꾸었듯이 일제는 조선 왕조의 흔적을 지웠다. 이제 다시 옛 모습을 찾았다. 

 

창덕궁에서 연경당과 낙선재는 공통점이 있다. 두 곳 다 장락문(長樂門)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왜 같은 궁궐 안에 같은 이름의 문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연경당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연회를 베풀 곳으로 지었다 한다. 낙선재는 영친왕의 부인이었던 이방자 여사가 거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낙선재에서 가까운 수강재는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거처했던 곳인데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고 불과 9일 뒤 낙선재에서 이방자 여사가 눈을 감았다. 시누이 올케가 말년을 가까이서 사이 좋게 보내다가 이승을 하직했다.

 

창덕궁 인정전 동쪽 바로 옆 건물이 선정전(宣政殿)인데 이 건물에는 청기와가 얹혀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선정전과 선정문 사이에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정전이라는 현판이 잘 안 보인다. 가까이 가서야 보인다. 왜 유독 선정전만 청기와인가. 광해군 때 인왕산 밑에 지었다는 인경궁의 건물을 가져온 것이라는데 선정전이 보물로 지정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궁금하다. 

 

 

 

 

김세중출간작가

더 편리하고 쉬운 한국어를 꿈꿉니다. 틈틈이 자전거여행도 합니다. 민법의 비문(2022), 품격 있는 글쓰기(2017), 보름간의 전국 일주(2017, 전자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