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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유배를 가다 (8)

by 까망잉크 2023. 3. 11.

유배를 가다 (8)

 

한명회는 유자광이 곤장을 맞아 살점이 터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by두류산Dec 13. 2022

 8장

 한명회는 유자광을 향한 원한이 사무쳤다. 유자광이 곤장을 맞아 살점이 터지고 고통으로 부르짖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유자광에게 사형을 감하신 것만 해도 주상의 은혜가 지극합니다. 공신에게 장(杖)을  것은 보기에 좋지 않으니, 아예 유자광의 이름을 공신 명부에서 삭제한 후에 장을 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거정도 오랜 친구인 한명회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유자광이 붕당을 맺어, 대간도 아니면서 함부로 외람되게 글을 올려 임금을 속이고 죄를 범한 것이 지극히 큰데, 지금 사형을 감하였으니 성은이 깊고 중합니다. 공신 명부에서 삭제하고 장을 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국광도 한명회와 서거정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유자광에게 특별히 사형을 감하기를 명하였으니, 주상의 은혜가 지나칩니다. 유자광이 공신으로서 성상을 속였으니, 이제 마땅히 공신 명부에서 지우고 장을 때려, 먼 지방에 유배를 보내어 영구히 용서하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공신 명부에서 지우지 않으면 종신토록 용서하지 않기가 어려우니, 삭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이 같은 소인들은 보기가 어려우니, 죄의 괴수 중 한 사람은 율에 의해 참형을 시행하여 뒷사람을 경계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정인지, 정창손, 노사신, 강희맹 등은 공신에게 장을 때리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유자광은 그 죄가 깊고 중하니 법에 의하여 처결하는 것이 당연하나, 사직에 관계되는 죄가 아니고 또 익대 공신이니 사형을 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유자광이 이미 주상의 은혜를 입어 사형이 감해졌으니, 장을 때리지 않고 먼 지방에 유배를 보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종은 대신들의 의견을 모두 들은 후 결정했다.

 “임사홍과 유자광, 김언신, 박효원 네 사람은 모두 사형을 감하고, 표연말과 김맹성, 김괴, 손비장은 법에 의하여 처벌하라!”

 

 대간들은 임금의 결정에 반발하여 차례로 나서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들은 임사홍과 유자광 등에게 사형을 감하라는 명령을 듣고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임사홍과 유자광은 소인의 모습이 모두 드러났고, 그 당류도 이미 찾았으니, 청컨대 모두 법에 의하여 처벌하소서.”

 “옛사람도 말하기를, 알고도 다스리지 않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청컨대 법을 무너뜨리지 마소서.”

 성종은 법에 따라 처벌하라는 대간들이 아뢰는 말을 모두 들은 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이 대신들과 의논하여 사정을 헤아려서 결정하였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

 

 대간들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반발했다.

 "사정을 헤아리면 진실로 사형이 마땅합니다. 붕당은 국가의 흥망과 사직의 안위가 달렸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붕당의 친밀함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도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청컨대 붕당의 죄로 다스리소서.”

 성종의 입장에서는 남이의 역모를 사전에 차단해 사직을 구한 유자광과 공주의 시아버지인 임사홍을 참형에 처할 수는 없었다.

 "이들의 죄는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 아닌데, 참형에 처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임금의 말에 한명회가 다시 나섰다.

 "간신이 임금의 곁에 있으면 오늘 한 대신을 내쳐 버리고, 내일 한 대신을 내쳐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되면, 사직이 따라서 위태로워집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어찌 사직에 관계되지 않는다고 이르겠습니까? 간신들이 범한 바가 지극히 큰데 지금 베지 않고 다만 먼 지방에 유배시키면 뒷날에 다시 썼을 때 간계를 또 낼지 어찌 알겠습니까? 청컨대 법에 의하여 참형에 처하소서."

 "비록 사형에 이르지 않게 하여 먼 지방에 유배한다 해도 영구히 서용(敍用, 죄가 있어 벼슬을 박탈했던 사람을 다시 임용) 하지 않으면, 다시 벼슬을 할 리가 만무하다.”

 

 대사헌 유지(柳輊)가 나서서 아뢰었다.

 "비록 공이 크다고 할지라도 사소한 죄라면 용서할 수 있지만, 국가의 큰 죄에 어찌 옛 공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이 이르기를, 악을 제거하는 데에는 근본에 힘쓰라고 하였으니, 어찌 용서하겠습니까?”

 "죄가 크기 때문에 이같이 처단한 것이다. 춘추시대에는 ‘공숙단이, 당나라에는 노기, 송나라에는 왕안석이 있었는데, 임금이 이들을 능히 제거하지 못한 것을 후세에서 비난하였으나, 나는 알고서 죄를 주었으니 여기에 비길 것이 아니다. 나도 역시 옛일을 살펴보았다. 경들만이 어찌 옛일을 검토해 보았겠는가?”

 공숙단(共叔段)은 춘추전국시대 정(鄭) 나라 장공(莊公)의 동생이었다. 모후와 내통하여 반역을 꾀했으나, 장공이 이들의 계획을 알고 공숙단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관리를 규찰하는 업무를 맡은 사헌부의 대간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호랑이를 기르면 스스로 근심을 남긴다고 하였으니, 임사홍과 유자광 등을 비록 먼 지방에 귀양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다른 날에 다시 서용(敍用)할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오로지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임금은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면 좋은 정치가 되는 것입니다. 청컨대 법대로 죄를 주소서.”

 먹줄은 먹물을 묻혀서 곧게 금을 긋는 데 쓰는 먹통에 딸린 실이었다. 먹줄은 건축을 할 때 표시한 대로 바로 세우는 일과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는 기준으로 삼았다.

 

 성종은 대간들이 자신들의 말을 먹줄에 비유하는 것이 가소로웠다. 임금은 대간들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대간의 말을 어찌 다 믿을 수 있겠는가?”

 대간들은 임금의 뼈를 때리는 말에 움찔하였다. 대사헌 유지가 힘을 내어 아뢰었다.  

 "근일에 임사홍이 대간과 더불어 사귀어 대신을 모함하였으니, 성상께서 믿지 않으심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대간이 된 자가 어찌 모두 박효원과 같겠습니까? 지금 임사홍의 일은 개국 이래로 없었던 것이니, 비록 다 베지는 못할지라도, 청컨대 죄의 괴수를 베어서 그 나머지를 경계하면, 뒤에 대간이 된 자도 자연히 경계하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성종은 오른손을 들어 더 이상의 말을 제지하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유자광은 선왕조(先王朝) 때의 공신이고, 임사홍의 아비 임원준은 지금의 공신이다. 이들에게 죄를 준다면, 전일에 삽혈동맹(歃血同盟)에서 공신들은 영구히 죄를 용서한다고 맹세한 것은 어찌해야 하겠는가? 경들은 사형을 감한 것을 가볍다고 하나, 나는 유배형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만약 모두 법에 따라 처벌한다면, 어찌 공신은 백세(百世)까지 죄를 용서한다는 뜻을 지키겠는가?”

 삽혈동맹은 왕과 공신들 상호 간에 배신하지 않겠다고 천지신명 앞에서 함께 피를 마시거나 입에 발라 맹세하는 공신회맹제(功臣會盟祭)에서의 의식이었다.

 

 성종은 신하들을 모두 물러나게 하였다. 대간들과 대신들은 임금의 단호한 말에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였다.

 이 날의 일을 기록한 사관은 임사홍과 공모한 박효원을 비판하였다.

 "대간들이 ‘박효원 등이, 성상(聖上)이 대간을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였다.’고 한 것은 옳다. 바야흐로 박효원이 현석규를 탄핵할 때 주상도 그의 말이 곧다고 하였는데, 임사홍과 붕당을 지어 비호하는 정황이 드러난 뒤에야 비로소 이전의 말들이 모두 간사한 것임을 알았다. 이것으로 주상이 곧은 선비의 바른말도 혹시 의심한다면, 그 화(禍)가 어찌 크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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