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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79/80

by 까망잉크 2023. 6. 20.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79) 고창녕

입력 2021. 02. 17 18: 26

그림/정경도(한국화가)

“서방님, 그리 술잔을 드시고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다소곳이 김선비 앞에 앉아 있던 소백주가 말없이 앉아있는 김선비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 내 잠시 먼 과거의 생각에 잠기었습니다.”

김선비는 몰려오는 상념을 고개를 저어 털어버리며 무겁게 입을 열며 들었던 술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과거의 생각이라뇨?”

“아아! 그 그 옹기장수 이야기요!”

김선비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불쑥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하! 서방님께서 그 명판관으로 유명한 고창녕 대감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셨나 보군요?”

소백주가 옹기장수 하니 김선비가 떠올렸던 홍수개 이야기가 아니라 고창녕 대감의 옹기 값 변상 소송 판결을 생각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으 으음!....... 그 그랬다오! 참으로 그 옹기장수 판결은 명판결이지요!”

김선비가 얼버무렸다. 소백주가 말한 고창녕 대감의 옹기장수의 ‘옹기 값 변상 소송’ 판결에 대한 이야기는 김선비도 잘 알고 있었다.

전 재산을 들여 옹기를 사서 옹기장수로 나선 사내가 옹기지게를 짊어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팔러 다니기로 했다. 첫 장삿길을 나서서 산 고개를 넘다가 지쳐 길가에 옹기지게를 작대기로 받쳐두고 잠시 쉬었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아뿔싸! 거센 바람이 불어오더니 옹기지게를 휘감고 갔다. 순간 옹기지게가 균형을 잃고 ‘쿵!’ 하고 넘어져 옹기가 전부 깨지고 말았다. 깜짝 놀라 깨어난 옹기장수가 보니 옹기가 전부 박살이 나서 하나도 성한 것이 없었다. 살길이 막막해진 옹기장수가 울상이 되어 고을 원님을 찾아갔다. 그 고을 원님이 고창녕 대감이었다. 관가의 단 위에 높이 앉은 고창녕 대감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옹기장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또 나리! 전 재산을 들여 산 옹기를 지게에 짊어지고 장사를 나섰는데 산 고개 마루에서 작대기를 받쳐두고 쉬다 깜박 잠이 들었습지요. 그런데 그만 거센 바람이 불어와 지게가 넘어져 옹기가 다 박살이 나서 쫄딱 망했습니다요. 제 옹기 값을 좀 변상 받아 주십시오!”

허허! 세상에 살다 살다 바람이 깨버린 옹기 값을 변상해 주라니? 어떻게 바람을 붙잡아와 옹기 값을 변상 받을 수 있겠는가?

“으음! 그래!......”

옹기장수의 그 말을 들은 고창녕 대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옹기장수를 쓰윽 바라보았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80) 목민관(牧民官)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학과 졸업)

고창녕 대감이 옹기장수를 보니 행색이 초라했다. 옹기 값을 변상 받지 못한다면 가족들이 모두 굶주릴 것이고 필시 비렁뱅이가 될 것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고창녕 대감이 입을 열었다.

“여봐라! 인근 바닷가의 어장 주인들에게 이 옹기장수에게 깨진 옹기 값을 변상하도록 해라! 어장 주인들이 배가 잘 다닐 수 있도록 유익한 바람을 기원했을 터이니 그 바람은 그들이 불러일으킨 것이다.”

“예! 사또나리,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이방이 대답하고 그것을 기록했다.

“사또나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깨진 옹기 값을 변상 받게 된 옹기장수가 관가의 마당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고창녕 대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이민위천(以民爲天)을 실천하는 목민관이었다. 가난한 옹기장수가 바람이 불어와 옹기가 깨진 것을 부자 어장주인들 여럿이 분담하여 주도록 했으니 어찌 명판결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함께 나누며 잘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 나만 혼자 잘 먹고 잘 살아가야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서방님은 고창녕 대감 같은 훌륭한 목민관(牧民官)이 되고 싶으신가 보군요?”

소백주가 김선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민위천(以民爲天) 선우후락(先憂後樂) 하고 싶었소만 이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나요?”

김선비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벼슬자리를 돈을 주고 사러 왔다가 그것도 실패하고 늙은 어머니에 가족이 굶주려 죽게 생겼다는데도 귀향을 하려다말고 기생 소백주를 만나 저 천하절색(天下絶色) 미모에 붙들려 이렇게 삼년을 훌쩍 지내 버렸으니 어찌 난봉꾼 홍수개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과거시험에 수없이 낙방하고, 불효하고, 좋은 남편도 아니었고, 자신도 못한 공부를 잘해 과거시험에 급제해 출세하라고 자식들을 달달 볶아댔으니 좋은 아버지도 아니었다. 늙은 어머니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가족들은 무사할까? 아름다운 여인에게 빠져 자신의 실체를 망각하고 삼년이나 소식 한 점 없이 살아왔으니 생각할수록 정말 홍수개보다 더 못한 인간이었다. 이민위천, 선우후락보다도 우선 자신을 추스르고 당장 가족의 안위부터 알아보아야 했다.

“서방님!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능력을 발휘하고(天下有道則見), 천하에 도가 없으면 조용히 물러나 수신에 힘써야 한다(無道則隱)고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지요. 천하의 도가 땅에 떨어진 시대라고는 하나 알 수 없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서방님! 혹여 좋은 기회가 올수도 있겠지요.”

소백주가 빈 잔에 술을 부어주며 김선비를 위로하며 말했다.

“좋은 말씀 고맙구려! 그러나 무사심(無邪心)이라오. 이제 떠나야겠지요.”

김선비가 소백주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술잔을 들며 말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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