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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81/82

by 까망잉크 2023. 6. 21.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81) 향기로운 여인

입력 2021. 02. 21 18: 03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필경 서방님께서는 이제 고향에 가시면 늙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 때문에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날들이 지난 봄 화사하게 피어났다 시들어 버린 꽃들과 같이 추억이 되어버릴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하오니 참으로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소백주는 울컥 울먹이며 김선비의 빈 술잔에 술을 부어 채웠다.

“인생의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을 내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생각하건데 사람으로서 도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 도리를 우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내 잠시 망각했다는 것을 느꼈던 것뿐입니다. 내 비록 사람의 도리를 찾아 먼 길 떠난다 한다지만 우리 사랑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서방님, 그 말씀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대를 내 품에 안고 살아온 지난 날 난 최초로 사람으로서 권력이나 지위나 돈에도 절대 걸리지 않는 인간의 참된 사랑을 알았던 것이지요. 자! 이별일랑 잊고 오늘밤 한잔 술잔을 기울입시다.”

“그래요. 서방님.”

김선비와 소백주는 이별에 대한 우울한 기분을 애써 털어버리려고 술잔을 부딪치며 술을 들었다.

김선비는 술잔을 비우고 나서 가슴에서 샘솟듯 솟아나는 시정(詩情)에 겨워 즉흥으로 시를 읊조렸다.

“지난 밤

쓸쓸한 귀향길

봄길 따라가다가

어여쁜 꽃향기에 취해

그 꽃 안고 잠 들었네.

달게 한잠 자고 일어났더니

그새 천지에 세 번이나

매미가 울었다고 하네.

나그네의 발길 돌려

길 떠나려하니

꿈속에서 만난 임 얼굴

눈앞을 가리네.”

고요히 가슴에서 끓는 정한(情恨)을 읊고 난 김선비는 채워진 술을 단숨에 삼키고는 눈을 감고 한 송이 수선화처럼 정한 자태로 시를 듣고 있는 소백주를 바라보았다. 언제보아도 항상 향기로운 여인 소백주, 웬만한 사나이보다도 더 큰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 그 봄 동산 같은 푸른 생명 자라 오르는 따뜻한 마음의 단정한 뜰을 김선비는 호젓이 걷고 있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82) 기약(期約)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처음 만났던 그날 밤 한 동이 술을 마시고 한편의 시를 써서 그녀에게 보이고 그 시를 보고 조건 없이 자신을 선택해 주었던 소백주를 생각하고는 김선비는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것도 그저 육체가 만나 타오르는 불꽃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 사랑 안에는 세상의 잡스런 허위와 흥정을 대번에 휩쓸어버리는 가슴 짜릿한 통쾌함이 깃들어 있었고 또 은밀하고 달콤한 꿀맛과 같은 희열이 있었다.

“서방님의 시를 들으니 처음 만났던 그 밤이 생각나네요. 한 동이 술을 마시고 거침없이 써 내려가던 그 꾸밈없는 시가 참 마음에 들었지요.”

“나 같은 사람의 시를 알아봐 주고 또 거지나 진배없는 나를 받아들여 이렇게 화사한 꿈결에 살게 하였으니 비록 내 훗날 저승에 간다 하여도 그대 소백주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김선비와 소백주는 다시 술잔을 비웠다. 이제는 김선비가 술병을 들고 소백주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술잔을 든 소백주가 그윽한 눈빛으로 김선비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기약(期約) 없는 임이 오신다기에 오가는 사내들 혹여 임인가 그리워 대문을 열어놓고 임 기다리기 삼년 꽃소식 몰고 온 임 버선발로 맞았네 내 그 임을 모시고 꽃 속에서 삼년 어젯밤 무서리 내려 꽃잎 시드니 임은 그새 멀리 떠나려하네”

가슴속 끓는 이별의 슬픔을 시로 읊는 소백주의 눈가에 그새 뜨건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스미어 올랐다. 희미한 등잔불에 반짝이는 이슬을 대롱대롱 맺혔다가 주르르 소백주의 뺨을 타고 구르는 뜨건 것을 본 김선비는 순간 가슴이 미어터지는 듯 했다. 김선비는 일부러 외면하며 술잔을 들었다. 이곳에 그냥 눌러앉아 지내며 꽃 같은 한 세월 지내버리면 그만이겠으나 그것은 아니 될 일이었다. 잠시 어느 풍경 좋은 곳에 취해 넋 잃고 앉아 있다가 갈 길을 잊고 있었으니 가는 길이 비록 고단한 길일지라도 이제는 또 그 길을 운명처럼 떠나가야만 했다.

“내 그대를 버리고 가는 게 아닙니다. 그대 내 마음에 꽃인 양 안고 갈 것이니 우리 좋은 시절에 다시 꼭 만납시다.”

김선비는 소백주 쪽으로 다가가 어깨를 와락 감싸 안았다. 소백주가 가늘게 흐느끼며 김선비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왔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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