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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땅의 歷史48

[박종인의 땅의 歷史]“우리의 적은 달래내 고개다, “우리의 적은 달래내 고개다, 무조건 길을 뚫어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경부고속도로와 대한민국 - 달래내 고개 비석 이야기 입력 2022.12.28 03:00 경부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성남시 달래내 고개 옛길 고개 마루에 비석이 하나 서 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달래내 구간 공사 때 순직한 육군 1201건설공병단 소속 병장 한기영 순직비다. 성리학 교조주의에 빠져 상공업을 천시했던 조선왕조는 왕조 초기 건설했던 대로(大路)들을 방치했다. 물류 인프라 부재로 상공업은 발전 기회를 상실했다. 대한민국이 성립하면서 한반도에 본격적인 도로 건설 작업이 진행됐고 그 상징이 경부고속도로다. “길은 수레가 다니게 된다면 저절로 닦이게 된다”며 도로 건설을 주장했던 18세기 북학파 박지원의 꿈은 2.. 2022. 12. 28.
[박종인의 땅의 歷史]고종 43년간 한성판윤은 429명... 평균 한 달 엿새 근무했다 고종 43년간 한성판윤은 429명... 평균 한 달 엿새 근무했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326. 조선왕조 500년 동안 한성판윤은 무엇을 했나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2.21 03:00 경복궁 근정전. 매서운 겨울이지만 한복 입은 관광객이 고궁 나들이에 한창이다. 조선전기 ‘경국대전’을 비롯해 각종 성문법을 완비한 조선왕국은 그 법에 의거해 백성을 통치했다. 하지만 법은 수시로 권력에 의해 무시당했고 이로 인해 백성은 부패한 관리로부터 피해를 입어야 했다. 한성판윤을 비롯해 대민 행정을 책임지는 관리들의 법정 임기도 무시당했다. 조선시대 한성판윤 평균 재직 기간은 석달에 불과했다. /박종인 기자 * 유튜브 https://youtu.be/iJmGuH-6y5I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흔히.. 2022. 12. 21.
[박종인의 땅의 歷史]단종 복위 운동 벌어진 죽계천에는 핏물이 흘렀다 단종 복위 운동 벌어진 죽계천에는 핏물이 흘렀다[박종인의 땅의 歷史] 325. 순흥 피끝마을과 금성대군 신단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2.14 03:00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는 세종 여섯째아들 금성대군 이유(李瑜)를 기리는 제단이 있다. 금성대군 신단이라고 한다. 이유는 1457년 형 수양대군이 벌인 쿠데타 계유정난(1453년)에 반대해 단종 복위를 기획하다가 탄로나 사약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순흥부사를 포함한 순흥 일대 반 계유정난 세력이 떼죽음을 당했다. 훗날 1742년 영조 때 금성대군이 복권되고 그가 유배됐던 자리에 제단이 설치됐다. 순흥에 흐르는 죽계천을 따라 죽은자들 피가 15리를 갔는데, 그곳에 있던 마을을 ‘피가 멈춘 마을’이라고 해서 ‘피끝마을’이라고 부른다./박종인 기자 * 유.. 2022. 12. 14.
[박종인의 땅의 歷史]주상 앞에서 중국 사신들은 심야까지 기생을 희롱하였다 주상 앞에서 중국 사신들은 심야까지 기생을 희롱하였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320. 이씨 왕실 족보 왜곡과 1537년 경회루에서 벌어진 막장 사대(事大) 대참사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10.26 03:00 경복궁 경회루에서는 왕이 주재하는 연회가 수시로 열리곤 했다. 그런데 중종 때인 1537년 봄날, 명나라 사신인 한림원 수찬 공용경(龔用卿)과 호과 급사중 오희맹(吳希孟)은 배석해 있던 조정 신하들이 온몸을 떨며 분통을 터뜨릴 정도로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평상복을 입고 나타나는가 하면 중종을 끌고 궁궐을 두루 구경하는가 하면 기녀들에게 음란한 춤을 추게 하고 먹물을 얼굴과 옷에 뿌리는 행패도 보였다. 하지만 고려 때 ‘역적 이인임’이 전주 이씨 조상이라고 기록된 명나라 문서를 고치기 위해서, .. 2022. 10. 26.
[박종인의 땅의 歷史]성리학 관료들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강남 봉은사 성리학 관료들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강남 봉은사 [박종인의 땅의 歷史] 318. 선정릉 옆 봉은사에 벌어진 조선불교 대참사와 승려 백곡처능 입력 2022.10.12 03:00 성종 부부가 묻힌 선릉과 중종이 묻힌 정릉을 합쳐서 선정릉이라고 한다. 사진은 정릉이다. 봉은사(奉恩寺)는 성종릉인 선릉을 수호하는 사찰이었다.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신봉했던 일반 선비와 달리 조선 왕실은 불교를 믿었다. 원래 견성사라 불렸던 봉은사는 명종 때 고양에 있던 중종릉을 선릉 옆으로 옮기면서 지금 위치로 옮겨 중창됐다. 그러자 조선팔도 유생들이 일어나 선종 사찰인 봉은사, 교종 사찰인 봉선사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폐불 운동이 극에 달했던 효종과 현종 때, 성리학을 공부했던 승려 백곡 처능이 한자 8000자가 넘는 장문의 ‘.. 2022. 10. 12.
[박종인의 땅의 歷史혁명가 김옥균의 흔적 위에 서 있는 매국 귀족 박제순의 돌덩이 ] 혁명가 김옥균의 흔적 위에 서 있는 매국 귀족 박제순의 돌덩이 [박종인의 땅의 歷史] 입력2022.09.14. 오전 3:01 315. 서울 종로구 화동 2번지 정독도서관 땅의 팔자 서울 종로구 화동2번지 정독도서관 본관 뒤편 언덕에는 정체불명인 돌덩이가 보존돼 있다. 안내판을 봐도 정체가 도무지 불명이다.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보존한다’라고 적혀 있다. 사실은 이 돌덩이는 1905년 을사조약 대표서명자인 외부대신 박제순 집터에 있던 우물돌이다. 새겨진 글자들은 박제순이 썼고, 정독도서관 부지 절반이 박제순 집터였다. 집터는 1884년 갑신정변 주역인 김옥균 집터와 겹친다. 김옥균 집터는 이 언덕 아래 잔디밭 부근이었다. 정변을 함께 한 서재필 또한 이곳에 살았다. 두 사람 집터에는 훗날 대한제국에.. 2022.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