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새해입니다.”
“학회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새해입니다. 신년을 맞이하여 병술 년 개띠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도 하시는 일들을 모두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한국구비문학회와 한국웃음문화학회 공동으로 개최한 학술발표회(2007년 1월 10일, 건국대학교)에서 연구발표에 들어가기 전에 순서에 따라, 학회장 인사말을 하게 되어 위와 같이 말문을 열었다. ‘저는 새해입니다’ 하는 데까지는 그런 대로 듣고 있던 회원들이, ‘신년을 맞이하여 병술 년 개띠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라고 하는 대목에 이르자, 좌우를 둘러보며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올해는 정해 년 돼지띠 해인데, 학회장이 인사말을 하면서 병술 년 개띠 해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모두들 학회장이 크게 실수하여 망신살이 뻗친다고 여길 즈음이다.
“제 인사말이 이상하지요? 저는 초등학교도 못 나왔거든요. 초등학교도 못 다녔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회원들이 어리둥절해 하다가, 학회장 스스로 인사말을 잘못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말에 다시 긴장하기 시작한다. 새해 인사말을 그렇게 어긋지게 하는 것은 초등학교도 못 나온 탓이라며, 학벌문제로 핑계를 대는 까닭이다. 그것도 대학이 아니라 초등학교를 문제 삼으니 납득하기 어렵다. ‘정말 초등학교도 안 다니고 교수 노릇을 한단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저는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지금 대학선생을 하고 학회장도 합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웃음문화학회장인 서대석 교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회장이신 김웅래 교수님도 초등학교 못 다녔습니다.”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 확실하게 사실을 밝힌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고 대학선생 노릇을 하며 학회장 노릇도 한다고 딱부러지게 말한 것이다. 자기 입으로 초등학교도 못 다녔다니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른 교수들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문제이다. 웃음문화학회 회장 서대석 교수와 부회장 김웅래 교수까지 끌어들여 모두 자기처럼 초등학교도 안 나왔다고 한 것이다. 일종의 동일시 방법이자 물귀신 작전을 벌인 셈이다. 회원들이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촌놈인 임재해는 몰라도 서대석, 김웅래 교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학력이 잘 알려져 있는 까닭만은 아니다.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고서 교수는커녕 대학에 입학 조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교수는 각각 서울대와 고려대를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학위까지 받았다. 따라서 정해 년 돼지띠 해를 병술 년 개띠 해라고 하는 실수를 넘어서, 아예 다른 교수들 학력까지 사실과 다르게 깎아 내리는 말을 학술대회 단상에 올라가서 여러 학회회원들 앞에 공공연히 하고 있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그것도 당사자들이 있는 면전에서 말이다.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만 하면 되지 남의 부끄러운 학력을 들추어내는 것은 이만저만한 결례가 아니다. 한국과 같은 학벌사회에서, 학계의 원로교수를 두고 “아무개는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고 공식 석상에서 널리 말하는 것은 대단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병술 년 개띠해라는 말에 숙덕거리다가 초등학교도 안 나왔다는 말에 의아해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예 좌중의 다른 교수들까지 끌어들여, 초등학교도 안 다녔다고 근거 없는 허물을 늘어놓으니, 새해 벽두부터 ‘무슨 해괴한 말을 하는가’ 하고 마음이 썩 불편해져서 얼굴표정이 굳어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오래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황을 뒤집어야 한다.
“그 때는 초등학교가 없었거든요. 저는 국민학교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국민학교뿐이어서 초등학교 다닐래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표정을 풀며 웃는다.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극적인 반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실수를 가장한 것이다. 그러나 반전의 상황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첫마디에 말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사람도 있고, 둘째 마디에 비로소 알았다며 표정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음 말을 계속한다.
“국민학교도 못 다닌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 은사되는 교수님들 가운데는 국민학교도 졸업 못했어요. 그때는 소학교만 있었거든요.”
출처: http://limjh.an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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