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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 4>

by 까망잉크 2018. 4. 29.

 

<조선왕조 뒷 이야기 4>

(주)하동신문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조선 태종13년(1413) 조정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을 8도로 나누고, 지역의 특수성을 따져 오늘날의 특별 또는 광역시급의 부(府), 일정규모의 도시는 목(牧),  행정?군사적 필요성에 따라 대도호부(大都護府) 작은 규모는 도호부, 최소의 고을을 현(縣)으로 개편하고, 그 수령으로 부에는 정2품직 부윤(府尹)을 두었는데, 한양, 전주, 함흥 3곳이었다. 목에는 정3품직 목사, 대도호부에 정3품직 대도호부사, 도호부에는 종3품 도호부사를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목은 전국에 20개, 대도호부는 안동, 강릉, 안변, 영변 등 네곳, 도호부는 수원, 창원, 순천, 연안, 철원, 갑산, 삭주 등 44개였다.
현은 일정 지역의 인구와 농지의 넓이를 따져, 큰 현은 종5품의 현령, 작은 현은 종 6품의 현감을 수령으로 삼았고, 군(郡)은 두지 않았다. 현령이 파견 된 곳은 용인, 동래, 남해, 능성, 옹진, 용강 등 34개 고을이었고, 현감이 맡은 곳은 141개로, 오늘날의 거창, 의령, 진해, 하동, 창녕, 사천 등지였다.
우리 하동은 현감을 둔 고을로, 기록에 전하는 첫 현감은 유명한 하경복(河敬復) 장군의 아우 하경리(河敬履)로 알려진다. 약 300여년 후인 숙종30년(1703) 하동이 도호부로 승격, 첫 도호부사가 한범석(韓範錫)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무관 출신으로 증조부인 징사(徵士) 한몽삼(韓夢參)의 묘소를 하동 흥룡으로 옮겨, 비음(庇蔭)으로 크게 현달, 20대에 하동도호부사가 되고, 뒤에 제주목사를 거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등, 7도의 병마사를 역임하였다는 전설을 남긴 인물이다. 그런 뒤 1894년 갑오경장 때 전국을 23부 337개 군으로 개편 할 때 「하동군」이 되고, 첫 군수는 홍택후(洪澤厚)였는데, 그는 동학혁명 진압에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있다.
조정은 획기적으로 개편 된 지방관아의 300여 수령을 임명함에 그 자질을 세심하게 따질 필요를 느꼈다. 지방 수령은 목민관으로서, 나라가 백성들로부터 욕을 먹고 안먹고가 그들의 입김에 달린 긴요한 자리였다. 토호 세력의 농간을 막아, 질서를 제대로 세워 백성을 교화시키며, 조세와 부역을 공정하게 집행할 유능한 자를 골라야 함이 급선무였다. 이리하여 서둘러 수령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만들어 반포하였는데 모두 일곱 항목이었다.
첫째, 농사와 양잠을 일으켜라. 둘, 호구 증가를 위해 노력하라. 셋, 교육을 진흥시켜라. 넷, 군역(軍役)을 공평하게 부담시키고, 때때로 군사훈련을 실시하라. 다섯, 부역(賦役)을 공평하게 부과하라. 여섯, 사송(詞訟)을 신속하게 처리하라. 일곱, 간사한 무리를 제거하라.
그런데 정작 중요한게 빠져버린 느낌이다. 뇌물을 먹지 말라던지, 부도덕하게 재산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핵심 덕목은 없었다. 하기사 「뇌물」이나 「모리(謨利)」와는 기본적으로 담을 싼 양심적 인물을 가려 뽑았기에, 그런 걱정은 아예 들먹일 필요가 없다는 정부의 입장이라면 할 말이 없다. 문제는 일곱 덕목 실적 평가였다.
수령의 재임 기준 기간이 대개 2년인데, 그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실적을 따져, 인사에 반영 한다 했는데, 그 평가와 인사반영 기준이 상당히 엄하고 짐스러웠던 것이다. 일곱 항목에 따라 다섯 차례 점검, 결과를「상」?「중」으로 매기고, 항목 모두를「상」으로 평가 받은 수령은 일계급 특진,「상」이 셋 이상이면 적절한 자리로 옮겨 주고, 「중」이 셋 이상이면 파직이었다.
참으로 순진 무구한 평가 지침이었다. 평가는 누가 할것인가. 임금이 직접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삼정승 6판서나 양심 덩어리라는 삼사(三司-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수장들이 300여 수령들을 찾아 일일이 따지기는 불가능했다. 이른바 중앙 벼슬아치 가운데 임시로 임명 된 어사(御使)들이 들락 거리며 수령들을 살피는데, 그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뇌물을 안겨야했고, 질펀한 기생파티까지 벌려야 「중」을 면할 수있었다. 지극히 순수했던 지방수령 평가제는 날이 갈수록 엄청난 부작용을 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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