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이야기> 9 세자를 잘못 세웠습니다!
선인교(仙人橋) 아래 물이 자하동(紫霞洞)에도 흐르니
오백년 왕업(王業)이 물소리 뿐이로다.
아이야! 옛나라 흥망을 따져 본들 무엇하리.
선인교는 고려 도읍지 개경에 있는 다리였고, 자하동은 태조5년(1396)새나라 조선이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세운 창의문(彰義門)이 선 자리다. 태조를 받들어 한양천도의 꿈을 이룬 정도전(鄭道傳)이, 조선 개국에 이러쿵 저러쿵 토를 달지 말 것을 외치고 싶은 그의 심경을 담아 남긴 시조가 아닌가 싶다.
정도전은 본관이 봉화, 봉화호장 정공미(鄭公美)의 현손으로, 아버지 정운경(鄭云敬)은 형부상서(刑部尙書-법무부장관)였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도 영주였고, 충청도 단양 삼봉(三峰)에서 태어났기에, 그는 호를 『삼봉』이라했다. 정도전은 목은 이색(李穡) 문하에서 정몽주, 이숭인 등 뛰어난 학자들과 어울려 학문을 익혔는데, 성리학에 밝고 문장이 수려하여 주변의 추앙을 받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도학을 익히며 쌓은 경륜을 현실에 펼쳐 태조를 도와 역성혁명 성공으로 조선 건국을 주도했다. 그가 기획한 혁명은,『불인(不仁)한 군주는 쫓아 내야한다』는 맹자의 혁명적 정치론에 근거하였다. 그는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새나라 조선을 『왕권체제』가 아닌 사대부 중심의 『신권(臣權)체제』로 만들어, 강고한 군주 일인의 나라가 되기 보다 학문과 경륜을 갖춘 신하들의 입김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어 보고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성공한 첫 혁명적 거사가 곧 태조의 막내 방석(芳席)을 세자로 책봉한 일이었다. 만약 야심찬 강성의 방원(芳遠)이『정몽주 살해』라는 결정적 공적을 내 세워 태조의 후계자가 된다면, 그가 품은 이상 정치는 별 볼일 없이 허망한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멀리 함경도 영흥 할아버지 환조(桓祖)의 옛집 나들이 길에, 방석의 세자 책봉 사실을 전해 들은 이방원은, 지체 없이 대궐로 들이 다쳐 태조 내외가 함께한 문안 자리에서 격한 말을 토하고 말았다.
“ 전하! 세자를 잘못 세웠습니다!”
“… …”
태조는 대꾸 할 말을 떠 올리느라 머뭇거리는데, 뜸을 들이질 않고 이번에는 아버지와 계모 강씨(康氏)의 가슴에 대못을 쳤다.
“전하! 여색을 삼가하여 주십시요!”
그로부터 4년 만인 1396년 8월, 신덕왕후 강씨가 불안 속에 세월을 보내다가 엄청난 불씨를 남긴 채 죽었다. 세자 방석을 옹호해야 할 정도전, 남은(南誾) 등은 급기야 점쟁이 안식(安植)을 불러, 세자의 이복 형제들 가운데 왕이 될 사주를 타고난 이가 누구인지를 살펴, 물망에 오른 이방원 등 몇몇 왕자를 죽여 버리고자 흉계를 꾸몄다. 그러나 그런 음모는 태조의 이복 아우 이화(李和)에게 들켜 이방원에게 전달 되니, 그들의 서투른 계략은 물거품이 되고, 이방원의 전광석화 같은 역습에 정도전 등은 죽음을 맞고 말았다. 이방원을 잡을 덫을 놓고 남은의 집에 둘러 앉아 좋은 소식있기만을 기다리던 정도전은, 엉겹결에 끌려 나와 노려 보는 이방원을 우러러 보고 애원하였다.
“만약 나를 살려 주시면 힘을 다하여 보좌하겠습니다!”
이방원은 냉혹하게 되 받았다.
“네가 이미 왕씨를 저버리고 또 이씨를 저버리고자 하느냐?”
하며, 단칼에 목을 쳐버렸다. 1398년 8월 26일의 일, 정도전의 나이 62세, 관직은 문하시랑 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부총리). 그의 아들 유(游)와 영(泳)도 함께 죽었고, 또 다른 아들 진(津)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형조전서까지 역임하고 중추원사 때 일이 터지니, 겨우 목숨은 건저 전라도 수군 병졸로 전락되었다. 그러나 한참 뒤 태종(이방원)으로부터 성실함을 인정 받아 형조판서 등 높은 관직을 누리기도 하였다.
개국 일등공신 정도전의 죽음은 안타까웠다. 이방원에게 목숨 구걸만 하질 않았어도 그의 죽음은 『장엄』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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