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74
역사의 기록에는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들이 많아, 읽는 이로 하여금 혀를 차게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은 유일하게 문자를 쓰고 그 문자에 의거 『있었고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길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따라서 인간은 모름지기 기록을 두려워해야한다.
지혜있는 사람은 역사의 기록을 통해 앞서간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 배우는가 하면, 잘못된 일은 거울 삼아 스스로를 경계하며 자신의 미래를 가꾸고 다듬는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데는『역사의 기록』을 살펴 이치(理致)를 궁구(窮究)하는 것 만큼 쉬울게 없는 것 같다.
천하의 간신 임사홍(任士洪)이 있었기에 천하의 흉폭 군주 연산군이 있었고, 연산군을 패망의 길로 인도한 인두껍을 쓴 저승사자가 곧 아비 임사홍보다 열배나 간특하다고 소문난 임숭재(任崇載)였다.
임사홍 아들 숭재는 성종과 숙의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휘숙옹주에게 장가들어, 임금의 사위된 신분으로 풍원위(豊原尉)에 봉해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야말로 품성이 인간 말종(末種)이었다.
현명한 군주로 일려진 성종이 어쩐 까닭으로 그런 패륜아에게 딸을 주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수수께끼다.
옹주가 숭재 집에 시집간 첫날 밤 느닷 없이 집에 불이나, 옹주가 속곳 바람으로 이웃 민가에 몸을 피하는 희한한 소동이 벌어졌다. 세간에는 임사홍을 미워한 어느 누군가가 일부러 집에 불을 지른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말이 파다했고, 하늘이 벌을 준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 일을 두고 사관(史官)은 이렇게 기록했다.
『임사홍은 소인으로 불의를 일삼아 부귀해졌는데, 복이 지나쳐 재앙이 생겼다.』
임숭재는 성질이 음흉하고 간사하기가 아비를 훨씬 능가하였으며 탐욕스럽기가 하늘을 찔렀다. 하는 일이라고는 조정의 참신한 신하들을 모함하여 죽이고 쫓아내는 일이었고, 거리에서 보거나 수소문으로 들어 어느 누구의 처첩이 얼굴이 반듯하다하면, 기어이 찾아가 빼앗아 연산군에게 바쳐 요절내 버리는 짓거리로 날을 보냈다.
연산군은 그를 지극히 총애한 나머지 임숭재가 사는 동네 이웃집 민가 40여채를 헐어, 임숭재 집과 왕의 거처인 창덕궁과 담을 같이하게 만들었다.
그는 노래와 춤에 능해 늘 연산군 옆에서 재롱을 피우고, 남의 아녀자들을 빼앗아 임금과 함께 질펀한 능욕과 변태의 잔치를 벌이기도했다.
탐색(探色)하기가 연산군과 죽이 맞았던 숙원 장녹수(張祿水)를 가운데 놓아 연산군의 성적 충동을 자주 부추기던 임숭재는, 마치 광폭한 패륜 군주 연산군을 나락(奈落)으로 밀어 넣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듯 행실이 정신 잃은 개 같았다.
비위에 걸리는 벼슬아치들을 제멋대로 불러 곤장을 치니, 보다 못한 조정 대간들이 임숭재를 거세게 탄핵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오히려 대간들을 질책하고 벌까지 주었다.
임숭재가 저지른 패륜의 극치는, 곧 그의 아내 휘숙옹주를 성 접대용으로 연산군에게 바친 일이었다.
연산군은 윤순(尹珣)의 아내로 왕실의 피붙이였던 종실(宗室) 이씨를 간음, 윤순을 과거 급제 5년만에 자헌대부로 특진 시켜 곧 오늘날의 장관급인 판서에 기용한 일도있다.
윤순은 중종때 대간들로부터 『마누라를 바쳐 출세한 더러운 판서』로 규탄 받아 쫓겨났다. 생각 나는 대로 종실 여인들을 즐겨 찾아 욕심을 채웠던 연산군이, 드디어 임숭재의 아내였던 여동생 휘숙옹주를 향해 침을 흘린 것이었다.
임숭재는 틈나는 대로 아내 희숙옹주를 연산군의 침실에 들여 보내니, 연산군은 자신과 아버지를 같이한 동생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 즐긴 셈이었다.
연산군은 그런 댓가로 땅과 노비를 수시로 임숭재에게 주었으니, 임숭재는 화대(花代)만은 수시로 톡톡히 챙긴 옹주의 기둥서방에 불과하였다.
저승의 성종임금 입장에서는 참으로 하늘이 무너질 일이었다.
그런 임숭재가 연산군12년(1505) 아비 임사홍보다 한해 먼저 죽었다. 태어난 때를 몰라 나이 얼마였는지 알 수가 없다.
연산군은 임숭재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이런 내용의 시를 썼다.
이제 누구와 함께 즐길 소냐
슬픔이 애절하여 뼈와 살을 에는 듯하다.
꾀꼬리와 나비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멋대로 춘색을 자랑하며 웃고 지껄이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던 누군가가 보고 기록한다. 『무엇이 될까』 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야 욕된 기록에서 벗어 나는 것이다. 임숭재는 태어나질 말았어야 할 임금사위였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조선 왕조 뒷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 뒷 이야기> (0) | 2018.09.18 |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5 (0) | 2018.09.17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3 (0) | 2018.09.12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2 (0) | 2018.09.10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1 (0) | 2018.09.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