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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 75

by 까망잉크 2018. 9. 17.

 

 

<조선왕조 뒷 이야기> 75

(주)하동신문

성종 19년(1488) 12월 24일, 재주는 넘치나 덕이 없었다고 세평(世評)이 높던 30년 대제학 서거정(徐巨正)이 69세 일기로 죽었다.
그의 본관은 달성, 아버지는 목사 서미성(徐彌性), 어머니는 조선 초기 명신 권근(權近)의 딸이었으니, 곧 서거정은 권근의 외손자였다. 따라서 권근의 아들인 태종의 사위 권규(權규)가 외삼촌, 권근의 손자이며 수양대군의 책사였던 좌의정 권람(權覽)이 외사촌 형님, 게다가 자부(姉夫)가 집현전 학사 출신 영의정 최항(崔恒)이었으니, 그의 환로(宦路)주변 인맥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서거정은 문명(文名)이 높고 역학(易學)에 능통한 유방선(柳方善)문하에서 한명회(韓明澮)·권람 등과 함께 배워, 천문·지리·성명(性命)·풍수에 일가견이 있었고, 특히 문장이 수려하여 시문에 능했다.
단종원년(1453) 명나라사신으로 가게 된 수양대군이 부교리(副校理)자리의 서거정을 일행 한사람으로 삼았다. 압록강 건너 객사에서 밤을 새우는데, 수양대군 앞으로 서거정의 어머니가 세상을 떴다는 부고가 닿았다. 세조는 몰래 숨기려했는데, 서거정이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니, 옆 사람이 놀라 물었다. 이에 서거정은
“꿈에 달에 변괴가 생겼으니 달은 곧 어머니를 상징하는지라, 내 어머니에게 무슨 변고가 있는게 아닌가 싶어 운다”라고 말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수양대군은 찬탄하여 말했다.
“서거정의 효성이 하늘을 찔렀구나!”
하고 도리 없이 어머님의 부고가 왔음을 알렸다.
훗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라 서거정을 아끼는 뜻으로「압록강 꿈이야기」를 자주 말하며 「서거정의 효심」을 머리에 간직했다.
“내가 자네를 들어 쓴 것은 유독 자네의 재주 뿐만 아니다!”
그런데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발했던 걸승(乞僧) 김시습(金時習)이 서거정을 만나 한수의 시를 지어 그를 힐난(詰難)했다.

風雨蕭蕭拂釣機
비 바람이 부슬 부슬 낚시터를 적시는데
謂川魚鳥學忘機
위수의 고기와 새는 눈치가 없을까
如何老作鷹揚將
무엇하려 늙으막에 매 같은 장수 되어
空使夷齊餓採薇
고사리 캐먹는 백이·숙제를 굶기는가
이를 테면 세조에게 빌붙어 충신들 설곳을 빼앗는 역할의 서거정을 질책하는 절귀였다. 김시습은 나이 열다섯 살이나 위인 서거정이었지만 선배로 존경하질 않았다.
찔린 서거정은 눈치가 빨라 고개를 숙였다.
“자네의 시는 내 죄의 기록이로다!”
서거정은 하늘같은 임금의 일도 잘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정면으로 꼬집는 기개도 있었다. 그가 사간원 우사간(右司諫) 벼슬을 할 때였다.
세조가 대소 신료들을 거느리고 대궐 뒤뜰에서 활쏘기를 하면서 정사를 논하니 서거정이 정면으로 지적했다.
“정전(正殿) 밖에서 활쏘기나 하면서 정사를 행하는 것은 곤란하다!”
얼굴이 붉어진 세조가 예조판서 이승손(李承孫)을 불러 말했다.
“서거정의 말이 매우 오만 방자하다. 내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승손이 재치로 세조를 치켜 다독거려 사건은 무마 됐다.
“서거정 말이 과하긴했지만 옛말에「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고했으니, 전하께서 밝으시어 서거정이 곧은 말을한게 아니겠습니까?”
이를테면 서거정으로 인해 왕이 한층 밝은 임금이 된 듯 느끼게했다.
이리하여 세조는 서거정을 더욱 중용하니 그는 육조의 판서를 모두 거쳐, 문신들이 누구나 한번 올라보고 싶어 했던 대제학(大提學)자리를 무려 30년간 차지, 딴 도학자들의 진로를 막아 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당대에 명망이 높던 김종직(金宗直)·강맹경(姜孟卿)·이승소(李承召) 등이 능히 대제학에 오를만했으나 서거정이 비껴 주질 않으니. 항간에 『김종직, 강맹경과 사이가 나쁜 서거정이 후임에 혹 두 사람이 발탁 될까 싶어 자리에 눌러 앉아있다』는 말이 퍼졌다.
서거정의 좁은 속내는 곧 그가 터뜨린 말 한마디에서 들어 났다.
“내가 갈리면 누가 감히 이 임무를 감당하겠는가?”
경솔한 말 한마디가 일생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서거정은 세조 최대의 업적 <경국대전>편찬을 주도했고, 우리 역사상 최고의 시선집 <동문선>, 역사서 <동국통감> 등 많은  값진 저술을 남긴 역사적 인물이었으나, 사관들은 그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릇이 좁아서 사람을 용납하는 아량이 없고, 후배를 장려하고 기른 바가 없으니, 세상은 서거정을 작다고 여겼다.』  아무리 잘난 인물도 너무 자리에 연연하면 작게 보는게 세상의 눈이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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