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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123

by 까망잉크 2019. 2. 4.

<조선왕조 뒷 이야기>123
(주)하동신문 :00 

명종17년(1562) 정월 대도(大盜) 임꺽정(林巨正)이 도행(盜行) 3년만에 붙잡혀 죽자 세상을 바로 봤던 한 사관(史官)은 이렇게 기록했다. 『나라에 선정(善政)이 없으면 교화가 밝지 못하다.  재상이 멋대로 욕심을 채우고 수령이 백성을 학대하여 살을 깎고 뼈를 발라 버리면 고혈이 다 마른다.  수족을 둘데가 없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 
굶주리고 아침 저녁거리가 없어 잠시라도 목숨을 이어 보고자 도둑이 되었다. 그들이 도둑이 된 것은 왕정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 
도둑에는 「칼든 도둑」 과 「붓든 도둑」 이 있다. 임꺽정 같은 칼든 도둑은 몸뚱이 한 부분에 돋은 종기에 불과 하지만 의관을 갖춘 붓든 도둑은 몸을 통째로 시들게하는 암세포다.
조선조 대표적「칼든 도둑」으로는 연산군때 가평·홍천 지역에서 명화적(明火賊)으로 불린 홍길동(洪吉同), 양주 백정 임꺾정, 숙종때 광대 출신 도적 장길산(張吉山)이 3대 도적으로 이름을 냈고, 붓든 도둑은 거명하기 조차 어려운 부지기수의 탐관오리들이었다. 
어쩌면 조선은 백성들 고혈을 빨아 대는 붓든 도둑들과 그들에게 털려 버리고 산골에 들어가 도둑질로 입에 풀칠을 해야했던 지극히 불쌍한 칼든 도둑들이 득실거리는 나라였다. 
두 부류 도둑들 가운데 대표 하나씩을 살펴 암울했던 그 시대상을 되짚어 본다.
임꺽정은 양주백정「임돌이」아들이었는데, 본명은「놈」이었다. 그는 자라면서 힘이 넘쳐 자주 사고를 치니 「부모가 걱정하는 놈」 이라하여 이름을 「걱정」 이라 했다가 「꺽정」 으로 변했다. 임꺽정은 장성하여 들판에 자생하는 갈대를 베어 삿갓이나 소쿠리를 만들어 팔아 먹고 사는데, 난데없이 고을 수령이 갈대에 세금을 매겨 피맺힌 푼돈을 몽땅 털어가니 분노를 참을 길 없어 그만 도적의 길을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힘이 장사였던 임꺽정은 황해도와 경기 북부 지방 도둑들의 희망이었을 만큼 쉽게 큰 무리를 거느린 두목이 됐다.
어느날 개성 근처 청석령에서 태종의 현손 이주경(李周卿)이 임꺽정 앞에 잡혀왔다. 
임꺽정은 이주경이 피리를 기가 막히게 잘 부는 재사(才士)임을 알고 술을 권하며 곡을 청했다. 이주경은 소매 속에서 피리를 꺼내 처음에는 흥겨운 곡으로 분위기를 뛰우더니, 곧이어 휘영청 밝은 달을 배경 삼은 슬프디 슬픈 애절한 가락을 토해 내니, 피리 소리가 멈춰지기도 전에 우악스럽던 산적들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고 임꺽정도 손등으로 눈시울을 쓸었다. 이윽고 임꺽정은 외쳤다.
“금지옥엽으로 자란 왕족을 무엇에 쓰겠느냐 돌려 보내라!”
하고는 차고있던 단검을 이주경에게 끌러 주며 “혹시 길을 가로막는 자가 있으면 이 칼을 보이시오!”했다. 
이주경은 그들 아지트를 빠져 나오며 몇차례 길목 지킴이 산적들의 검문을 받았으나 임꺽정이 쥐어준 단칼 때문에 무사했다. 
휴머니티 임꺽정을 들어 사람들은 의적(義賊)이라 불렀다.
「붓든 도둑」의 상징적 존재는 망국의 불씨를 지핀 국적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다.
그는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의 서질(庶姪), 고종29년(1892) 운명의 고부군수가 되어 악명을 날렸다.  그는 흉년에도 돈푼깨나 지닌 농민들을 골라 잡아 별난 죄명을 씌워 재물을 갈취했는데, 보통 억지가 아니었다. 
불효하다느니, 여자관계가 복잡했다느니, 도박을 했다느니, 형제와 이웃간에 불화하다느니 등 등,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생트집이었다. 
태인 현감질로 백성을 들볶았던 그의 아비 송덕비를 세운다며 강제로 1000냥을 거둬 먹으니 아비를 팔아 먹은 셈이 됐고, 멀쩡한 보(洑)가 있는데도 주민들을 동원, 그 아래 필요 없는 새보를 만들어 수세(收稅)랍시고 700석을 억지로 빼앗아 먹었다.
1894년 조병갑은 다시 한번 아비를 팔아 아비 회갑잔치를 들먹이며 고부향교 장의(掌議) 전창혁(全彰爀)을 불렀다. 「아버지 회갑에 쓴다」 며 향교에서 쌀 60가마를 내로라하니, 전창혁은 「향교에 그런 쌀이 없다」 며 솔직히 털어놨다. 
조병갑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창혁을 엎어 놓고 콩타작 하듯 두들겨 팼다. 결국 전창혁은 그길로 저승으로 갔다.
전창혁의 아들이 곧 유명한 동학혁명 주역 전봉준(全琫準)이었다. 전봉준이 맨정신이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청·일 양국 군대가 아니면 진압이 불가능했을 만큼 거센 불길의 「동학 민란」 은 이렇게하여 터졌다. 
그러니 한반도를 집어 삼킨 「일본군 한반도침략」 시초는, 붓도둑의 극치 조병갑의 탐학에서 비롯 됐다고 할수있다.
많이 배운자들의 농간에 가진 것을 털린 서민들은 망연 자실한데, 배불리 받아 먹고도 「대가성」 따지고 지극히 편리한 법문(法文) 「증거 불충분」 으로 풀려 나와 도리어 큰소리 치며 활보하는 세상에 민초들은 시들어가니결국 「먹물든 도둑」 들이 나라를 망하게하는  암세포가 아니겠는가.                    
정 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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