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507 [최영미의 어떤 시] [124] 주먹 [최영미의 어떤 시] [124] 주먹 입력2023.06.12. 오전 3:03 주먹 나보다 부자인 친구에게 동정받아서 혹은 나보다 강한 친구에게 놀림당해서 울컥 화가 나 주먹을 휘둘렀을 때, 화나지 않는 또 하나의 마음이 죄인처럼 공손히 그 성난 마음 한편 구석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덥지 못함. 아아, 그 미덥지 못함. 하는 짓이 곤란한 주먹을 가지고, 너는 누구를 칠 것인가. 친구인가 너 자신인가, 그렇지 않으면 또 죄 없는 옆의 기둥인가. -이시카와 다쿠보쿠(1886~1912) (손순옥 옮김)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치함) 가난한 생활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시인이 귀엽다. 다쿠보쿠의 시에서 내가 높이 평.. 2023. 6. 13. 6월의 밤(June Night) [최영미의 어떤 시] [123] 6월의 밤(June Night) 입력2023.06.05. 오전 3:01 일러스트=이철원 6월의 밤(June Night) 오 대지여, 너는 오늘밤 너무 사랑스러워 비의 향기가 여기저기 떠돌고 멀리 바다의 깊은 목소리가 땅에게 말을 걸고 있는데 내 어떻게 잠들 수 있으리오? 오 대지여, 너는 내게 모든 것을 주었지, 널 사랑해, 사랑해--오 나는 무엇을 가졌나? 너의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줄 수 있는 건- 내가 죽은 뒤 나의 육신밖에 없네. -사라 티즈데일(Sara Teasdale, 1884~1933) 가슴을 찌르는 마지막 행이 없다면 그렇고 그런 밋밋한 시가 되었을 텐데, 역시 사라 티즈데일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아말휘의 밤.. 2023. 6. 7.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가 [시인의 詩 읽기]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가 입력2023.06.02. 오전 5:02 어느새 태풍이 시작되는 여름이다. 올여름 엄청난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를 듣고 장화를 사야겠다는 지난해의 결심이 떠올랐다. 매해 여름 비가 늘고 있다는 기분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창밖으로 바라보는 비는 어느 정도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문제다. 차분해지는가 싶다가도 불쑥 켕겼던 일이 떠오르고, 그런가 싶다가도 안 좋은 일과 함께 안 좋은 사람의 얼굴까지 밀려온다. 서경온 시인의 태풍경보는 태풍이 도착하고 있는 와중의 뒤숭숭한 밤 풍경을 그리고 있다. 가지들이 헝클어지고 소나기가 다그치는 모습에서 아직까지 붙들려 있는 한 존재를 떠올린다. 과연 별일이었을까. 우리는 끌려다닌다. 빚에 .. 2023. 6. 3. 5월이 가네 2023. 6. 2. [살며 생각하며]청보랏빛 들꽃 정원 [살며 생각하며]청보랏빛 들꽃 정원 문화일보입력 2023-05-19 11:40프린트댓글0폰트공유 유연숙 수필가, 괴산 농부 붓꽃 행렬,여름 알리는 팡파르 초록빛 비비추와 만나면 환상 순수한 들꽃·옥수수 물결 풍경 내 취향에 딱 맞는 최고의 정원 자연으로 돌아온 20년 돌아본다 하고 싶은 대로 잘 살고 있을까 비 갠 아침이라 연초록이 선명하다. 이렇게 맑은 날엔 멀리 음성까지 내려다보이는 천상의 공간. 마루에 나와서 커피 한잔하다가 호미를 꺼내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일을 하다 새참으로 차를 한잔 마신 양 호미 들고 풀을 뽑고 있다.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별꽃을 뽑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꽃을 한번 보고 뽑기로 한다.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본래는 풀이었음에도 꽃이 .. 2023. 5. 21. [시로 여는 수요일] 꽃밥 [시로 여는 수요일] 꽃밥 입력2023.05.17. 오전 7:31 엄재국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 마른나무에 목단, 작약이 핍니다 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 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 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 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 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니다 꽃을 피워서 밥을 짓다니 마법처럼 보입니다. 할머니의 부지깽이가 아궁이 드나들 때마다 마른 가지들이 꽃을 활활 피워내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나무들의 마지막 꽃이 불꽃인 줄도 새삼 알겠습니다. 오월의 이팝나무 꽃이 밥물이 넘쳐서 피운 걸 알겠습니다. 세상에 안개가 자욱한 것은 돋보이게 할 어떤 꽃을 준비한 까닭일.. 2023. 5. 18. 이전 1 2 3 4 5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