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507 여름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7〉 여름밤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7〉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3-05-06 03:00업데이트 2023-05-06 03:00 하늘의 별들이 죄다 잠을 깬 밤. 별인 양 땅 위에선 반딧불들이 술래잡기를 했다. 멍석 핀 마당에 앉아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빗자루를 둘러메고 반딧불을 쫓아가면, 반딧불은 언제나 훨훨 날아 외양간 지붕을 넘어가곤 하였다. 반딧불이 사라진 외양간 지붕엔 하얀 박꽃이 피어 있었다. ―강소천(1915∼1963) 어린이날은 단 하루뿐이지만 사실 어린이의 모든 나날은 전부 어린이날이다. 그들은 날마다 행복하게 웃고 떠들고, 씩씩하게 뛰어놀고, 안전하게 오고 가야 한다. 어른이 지켜야 할 것에는 국방이라든가 법규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맑은 눈, 말랑한 손바닥, 보송한 .. 2023. 5. 6. 헛나이테 [경남일보] 강재남의 포엠산책(92) 헛나이테(양진기) 승인 2023.03.26 18:01 ‘낮술 환영’에 들어선 목포홍탁집 아줌마가 연분홍 홍어살을 저미고 있네 그녀의 속살도 한때는 저리 뽀얏을 거야 서비스로 애탕을 내오는 소매를 잡고 손님도 없는데 한 잔 허요 막걸리를 따라주자 넙죽 잘도 마시네 한 잔 들어가자 오래된 술친구처럼 묻지도 않은 딸 자랑에 젊은 시절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네 곰살궂은 친구가 뭔 띠요 누님 같은디 민증 까까? 옥신각신하다가 민증을 보여주네 또래라 생각했던 아줌마 일곱 살이나 어렸네 모진 풍파로 뿌리가 몇 번이나 흔들렸을까 근심으로 푸른 잎을 얼마나 떨구었을까 끓던 애탕이 식어 거북등이 되고 있네 오빠들, 또 .. 2023. 4. 5. 봄 [세계일보] [박소란의시읽는마음] 봄 함명춘 입력 : 2023-03-27 23:37:38 수정 : 2023-03-27 23:37:36 눈부신 햇살로 다가와도 본체만체 뒤돌아서니까 이번엔 비가 되어 온다 삐걱이는 복도를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듯 발뒤꿈치를 들고 내 손을 잡아달라고 이제 그만 문을 열고 나와 나를 안아달라고 나와 함께 젖어 흐르자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며칠 몇 밤을 그렇게 뜬눈으로 그러나 젖는 건 네 파인 눈과 네 텅 빈 가슴일 뿐 오늘도 내 집 몇 바퀴를 돌다 고갤 떨구고 휘적휘적 골목 어귀를 돌아나가는 봄이여 어제는 활짝 핀 개나리를 봤다. 누군가 전송해 준 사진 속에서. 홀린 듯 꽃 곁으로 다가가 여러 번 셔터를 눌렀을 한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잠시 웃기도 했으나… 꽃 한 .. 2023. 4. 2. 혼자에 대하여 [유희경의 시:선(詩:選)]혼자에 대하여 입력2023.03.29. 오전 11:40 ‘혼자 먹는 밥이 서럽고 외로운 사람들이 막막한 벽과 겸상하러 찾아드는 곳 밥을 기다리며 누군가 곡진하게 써내려갔을 메모 하나를 읽는다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그렇구나,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고 허기진 내 영혼과 함께 먹는 혼밥이었구나’ - 이덕규 ‘혼밥’(시집 ‘오직 사람이 아닌 것’) 서점을 하기 전만 해도, 식사는 함께하는 일이었다. 끼니란 배 속에 들어가면 다를 바 없는 것이니 자리의 즐거움이 우선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직장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은 팀원들과 나누는 점심시간의 환담이었으며 누군가는 불편하다는 회식을 마다한 적도 나는 없었다. 서점을 운영하고부터는 함께할 사람이 .. 2023. 3. 31. 사모곡[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사모곡[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0〉 입력2023.03.18. 오전 3:01 수정2023.03.18. 오전 8:09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멀리 걸었다. ―감태준(1947∼ ) “당신을 사모합니다.” 이런 고전적인 고백에서의 ‘사모’와 사모곡의 ‘사모’는 서로 다른 단어다. 사모곡(思母曲)은 그냥 사랑 노래가 아니라, 딱 ‘어머니’에게만 한정해서 바치는 노래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이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제 사모곡은 하나의 유형처럼 여겨진다. 사모곡이라는 제목의 시만 모아도 시집 몇 권은 족히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맨 처음, 고려가사 ‘사모곡’이 등장했을 때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 2023. 3. 20. 봄날의 이별[이준식의 한시 한 수] 봄날의 이별[이준식의 한시 한 수]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3-03-17 03:00업데이트 2023-03-17 08:37 술잔 앞에 두고 돌아갈 날 알리려는데, 말도 꺼내기 전 고운 임이 목메어 울먹인다. 인생이 원래 정에 약해서 그렇지, 이 응어리가 바람이나 달과는 아무 상관없지. 이별가로 새 노래는 짓지 말게나. 옛 곡 하나로도 애간장이 다 녹아나거늘. 낙양성 모란이나 실컷 즐기세. 그래야 봄바람과도 쉬 헤어질 수 있으리. (尊前擬把歸期說, 未語春容先慘咽. 人生自是有情癡, 此恨不關風與月. 離歌且莫翻新闋, 一曲能教腸寸結. 直須看盡洛城花, 始共春風容易別.) ― ‘옥루춘(玉樓春)’ 구양수(歐陽脩·1007∼1072) 낙양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수도 개봉(開封)으로 귀환하는 시인을 위해 열린 전별연.. 2023. 3. 17. 이전 1 2 3 4 5 6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