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507 사랑하는 우리 딸 보려무나 [고전번역원] 한시감상 이백서른다섯 번째 이야기 사랑하는 우리 딸 보려무나 변방이라 쌀쌀한 날씨에 제철 과일 늦어 칠월에야 앵두가 막 붉어지네 수박은 무산 인근에서나 난다는데 올해는 장마로 모두 물러버렸다지 고을 사람 두 주먹 맞붙이고는 큰 건 더러 이만하다고 자랑하기에 늘 술 단지 만한 수박만 보다가 이 말 듣고는 씹던 밥알 내뿜었네 평생 수박씨 즐겨 까먹었으니 양조처럼 즐겨 먹은 일 절로 우습구나 수박은 구경조차 힘드니 씨는 말해 무엇하랴 여름 내내 공연히 이빨이 근질근질했네 아들이 서울에서 올 때 한 봉지를 가져와 어린 누이가 멀리서 부지런히 마련했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까먹고 껍질 뱉으며 홍색 백색으로 널려진 모습 보았네 고이 싸서 보낼 때 네 모습 떠올려보니 알고말고, 아비 그리워 줄줄 눈.. 2022. 10. 24. 육탁 육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69〉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2-10-22 03:00업데이트 2022-10-22 04:56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하략) ―배한봉(1962∼ ) 산에는 절이 있고, 절 안에는 목어가 있다. 커다란 나무 물고기가 산바람을 맞아 흔들리는 모양을 보면 의아할 수밖에 없다. 산에 무슨 물고기인가. 물고기와 부처는 무슨 관계인가. 오래된 물고기 전설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물고기처럼 눈을 감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이 목어가 작아지고 둥글게 변하면 우리가 아는 목탁이 된다. 그러니까 스님들이 두드리는.. 2022. 10. 22. 영원한 미완성, 편지 영원한 미완성, 편지[이준식의 한시 한 수]〈183〉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10-21 03:00업데이트 2022-10-21 03:14 낙양성 가을바람 바라보다, 집 편지 쓰려니 오만 생각이 다 겹친다. 급한 김에 할 말을 다 못했나 싶어, 가는 인편 떠날 즈음 또다시 열어 본다. (洛陽城裏見秋風, 欲作家書意萬重. 復恐悤悤說不盡, 行人臨發又開封.) ―‘가을 상념(추사·秋思)’ 장적(張籍·약 768∼830) 바람의 이미지가 계절마다 다를 수 있다면 봄바람은 가슴으로 느끼고 여름 바람은 온몸으로 즐기는 것일 테다. 한겨울 북풍한설이 귓전을 때린다면 가을바람은 아마 나뒹구는 낙엽에 담겨 눈앞에 일렁이는 게 아닐까. 시인이 불현듯 고향과 가족을 떠올린 것도 바람 부는 낙양성의 스산한 풍광을 본 .. 2022. 10. 21. 겸허한 계절 [시가 있는 월요일] 겸허한 계절 입력2022.10.17. 오전 12:07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김현승 作 '가을의 기도' 부분 가을 하면 떠오르는 시다. 가을은 자연이 내려준 축복에 감사하면서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다. 가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동시에 춥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준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우리가 가을에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연의 흐름 앞에서 인간이 뭘 할 수 있단.. 2022. 10. 20. 가을 이잖니 가을이잖니 / 청송 권규학 친구야, 창밖을 보렴 산속, 나무 숲은 파릇파릇한 잎새 옷을 벗고 울긋불긋 알록달록 예쁜 단풍옷 갈아입었잖니 하늘, 구름을 보렴 비늘구름 두둥실 떠난 자리 나풀나풀 하늘하늘 새털구름 살포시 깔렸잖니 친구야, 날 좀 보시게 세상일일랑 그냥 젖혀두고 고민 걱정일랑 잊어버리고 있는 듯 없는 듯이 그저 그렇게 편히 사시게나 세상을 보면 세상은 세상 나름 평화롭고 하늘을 보면 하늘은 하늘대로 정겹잖니 혼자 보면 생각하는 만큼 제멋에 즐겁고 함께 보면 둘이 하나로 더불어 행복해지는 계절은 가을…, 가을이잖니 2022. 10. 18. 저무는 황혼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저무는 황혼/서정주 입력 :2022-10-06 20:08ㅣ 수정 : 2022-10-07 02:20 저무는 황혼 /서정주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뉘엿뉘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굽이굽이 등 굽은 근심의 언덕 너머 골골이 뻗치는 시름의 잔주름뿐 저승에 갈 노자도 나는 없느니. 소태깥이 쓴 가문 날들을 여뀌풀 밑 대어 오던 내 사랑의 봇도랑물 인제는 제대로 흘러라 내버려 두고, 으스스히 깔리는 머언 산 그리메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엇비슥이 비끼어 누워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 2022. 10. 14.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