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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507

낙엽(구르몽) [경남일보] [주강홍의 경일시단] 낙엽(구르몽) 승인 2022.10.23 15:46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 있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 바람에 흩어지며 흩어진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 낙엽은 날개소리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 낙엽이리니 ​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 2022. 11. 10.
[요즘에] 11월의 노래 [요즘에] 11월의 노래 입력2022.11.07. 오전 5:01 이근구 시조시인 동짓달 대지위에 시를 쓰는 낙엽들 모두가 떠났어도 뒷얘기는 남아 있어 봄여름 푸른 기약들 갈색으로 속삭인다 세월은 무심으로 사철을 되돌리고 그 갈피 희로애락 울고 웃는 온갖 삶이 조락의 고엽 밟으면 나목을 닮아간다 ​ 잎 진 나무 가지엔 새봄이 숨어있고 왕복 없는 인생길엔 도돌이표가 없어 만추의 등 굽은 황혼 주름 깊게 저문다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한다. 동짓달 하면 우선 황진이의 시조가 떠오른다. ​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참으로 기막힌 표현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어' 누가 이런 절묘한 표현을 시로 쓸 수 있겠는.. 2022. 11. 9.
가을 서리에 백발이 삼천장이라니! 가을 서리에 백발이 삼천장이라니! 고두현 논설위원 입력2022.11.04 06:20 수정2022.11.04 06:39 ​ 추포가(秋浦歌) ​ 삼천 장이나 되는 흰 머리 온갖 시름으로 올올이 길어졌네 알 수 없어라 거울 속 저 모습 어디서 늦가을 무서리 맞았는지. ​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 * 이백(李白, 701~762) : 당나라 시인. ----------------------------- 이 시는 이백의 ‘추포가(秋浦歌)’ 연작 17수 중 15수입니다.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그가 양쯔강 연안의 추포에 와서 지었는데 애상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 삼천장(丈)이면 10㎞나 되는데… ​ 이 시의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물론 과장된 표현입니다. 근심으로 허옇게 센 머리카락.. 2022. 11. 8.
쉰살 즈음에 쉰살 즈음에 / 천상병 늙어 가는 것이 서러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게 더 서럽다. 내 나이 쉰살 그 절반은 잠을 잤고 그 절반은 노동을 했으며 그 절반은 술을 마셨고 그 절반은 사랑을 했다. 어느 밤 뒤척이다 일어나 내 쉰 살을 반추하여 거꾸로 세어본다. 쉰 마흔아홉 마흔여덟 마흔일곱 아직 절반도 못 세었는데 눈물이 난다. 내 나이 쉰살 변하지 않는건 생겨날때 가져온 울어도 울어도 마르지 않는 눈물샘 뿐이다. 2022. 11. 7.
젊은 나에게 젊은 나에게 입력 : 2022.10.31 03:00 수정 : 2022.10.31 03:05 김정수 시인 사랑하는 너를 데리고 갈 데가 결혼 말고는 없었을까 타오르는 불을 지붕 아래 가두어야 했을까 반복과 상투가 이끼처럼 자라는 사각의 상자 야생의 싱싱한 포효 날마다 자라는 빛나는 털을 다듬어 애완동물처럼 리본을 매달아야 했을까 침대 말고 아이 말고 내 사랑, 장미의 혀 관습이나 서류 말고 아찔한 절벽 흘러내리는 모래 모래 모래시계 미치게 짧아 어지러운 피와 살 무성한 야자수 하늘 향해 두 손 들고 서 있는 모래 모래 모래사막 독수리의 이글거리는 눈망울을 사랑하는 너를 문정희(1947~) 진학, 취업, 결혼 등 인생의 분기점이 있다. 진학이나 취업이 혼자 이뤄야 한다면, 결혼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 2022. 11. 7.
사랑싸움[이준식의 한시 한 수] 사랑싸움[이준식의 한시 한 수]〈185〉 입력2022.11.04. 오전 3:02 어젯밤 비에 젖어 처음 핀 해당화, 여린 꽃송이 고운 자태 말이라도 걸어올 듯. ​ 신부가 이른 아침 신방을 나가더니, 꽃 꺾어와 거울 앞에서 제 얼굴과 견준다. ​ 꽃이 이뻐요 제가 이뻐요 낭군에게 묻는데, 꽃만큼 예쁘진 않다는 낭군의 대답. ​ 신부가 이 말 듣고 짐짓 토라진 척, 설마 죽은 꽃이 산 사람보다 나을 리가요? ​ 꽃송이를 비벼서 신랑 앞에 내던지며 낭군님, 오늘밤은 꽃이랑 주무셔요. ​ (昨夜海棠初着雨, 數타輕盈嬌欲語. 佳人曉起出蘭房, 折來對鏡比紅粧. 問郞花好奴顔好, 郞道不如花窈窕. 佳人見語發嬌嗔, 不信死花勝活人. 將花유碎擲郞前, 請郞今夜伴花眠.) ​ ―‘염화미소도에 부치는 시’(제염화미소도·題拈花微笑圖)’.. 2022.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