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507 가을이다, 삶의 증거를 찾아보자 [시인의 詩 읽기] 가을이다, 삶의 증거를 찾아보자 입력2022.11.04. 오전 5:00 지난 주말, 서울 지하철 3호선 불광역 가까이에 있는 마을 서점 ‘한평책빵’에서 시를 나눴다. 열댓명이 앉으면 빈틈이 거의 없는 작은 공간에서 ‘시 이어 쓰기’를 함께 했다. 시는 진입장벽이 높다. 책만 해도 시보다 낮고 노래와 춤은 더 낮다. 시의 문턱을 낮추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덥석 붙잡은 것이 이어 쓰기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시를 쓰자고 하면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래서 시를 쓰지 말고 ‘시의 마음’을 되찾아보자며 다음과 같이 귀띔하곤 한다. “우리는 모두 시의 마음을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사회화 과정에서 그 마음을 잊거나 빼앗긴다. 시의 마음이란 특별한 게 아니다. 공감하기다. 관.. 2022. 11. 5. [이 한편의 시조] 가을 요리 [이 한편의 시조] 가을 요리 /천성수 부산시조시인협회·국제신문 공동기획 입력2022.11.03. 오전 3:03 숲속을 헤매다가 산을 안고 왔습니다 새벽에 양념 섞어 요리를 했습니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감칠맛이 났습니다 풍경을 얹어놓은 회전판을 돌립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오솔길이 맛납니다 그 속에 깔린 단풍이 만찬으로 붉습니다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산을 눈에 담다가 마음에 담다가 더 담을 데가 없을 정도가 되면 산을 통째로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 시인은 단풍에 취했던 전날의 여운으로 새벽에 깨어 곳곳의 영상을 돌려본다. 바스락거리던 낙엽소리, 바람이 지나가던 오솔길이 맛깔스럽게 다가오고, 숲 속에 널려 있던 단풍 든 풍경들이 풍성하고 맛난 음식처럼 온 감각기관을 자극한다. 좋아하.. 2022. 11. 4. 그리움 [최영미의 어떤 시] [93] 그리움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2.10.31 00:20 [최영미의 어떤 시] [93] 그리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찌기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유치환 (1908~1967)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그리움 / 일러스트=김하경 ‘그리움’은 유치환 선생의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1939년)에 수록된 시.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라고 노래했던 바위의 시인이, 남성적이고 의지적인 시로 유명한 청마 선생이 쓴 서정시다. 너를 잃고 “공중의.. 2022. 11. 1. 나란히 물들고 싶은 사람 [시인의 詩 읽기] 나란히 물들고 싶은 사람 입력2022.10.28. 오전 5:00 근교에 나갔다가 서리가 내리기 전에 저 농작물들을 얼른 걷어야 할 텐데 하면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콩밭의 콩잎들도, 그 주변으로 길게 장대처럼 서 있는 수수도 색이 곱게 물들어 있길래 괜히 눈길을 주다가 돌아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리산에도 단풍이 물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년을 단위로 치면 황혼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이 무렵을 나는 가장 시(詩)적인 한때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지리산에 혼자 살면서 시를 쓰는 박남준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박남준 시인의 이 고운 시를 읽다보면, 이 시가 마저 이 계절을 푹푹 물들인다 싶습니다. ‘은빛 강물’이라는 말은 부부의 오랜 세월을 더 단단하게 끌어 매주는 것 같네.. 2022. 10. 30. <유희경의 시:선(詩:選)>차례가 온다 차례가 온다 입력2022.10.26. 오전 11:37 ‘글자들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노화라고 생각한다. 눈살을 찌푸리고 안경을 코에 걸치는 것을 늙음이라고 생각한다. 콧등에 진 주름을 얼음에 간 금이라고 생각한다. 곧 깨질 거라고 생각한다.’ - 김준현 ‘흼’(시집 ‘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 “좋은 일이 있어. 밥 사줄게.” 대뜸, 점심을 먹자는 선배에게 그 좋은 일이 무어냐고 채근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바쁘지만, 약속을 훗날로 미뤄보고도 싶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해서 선배가 기다리는 식당으로 간다.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묻는다. “좋은 일이 뭐예요. 궁금해 죽겠어.” “나는 배고파 죽겠다. 밥부터 먹자.” 숨넘어갈 것 같은 나를 두고 선배는 메뉴판을 본다. 그러다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2022. 10. 28. 삶의 색깔 삶의 색깔 / 청송 권규학 나쁜 일을 생각하면 나쁜 일이 생기지만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만산홍엽(滿山紅葉), 가을 아침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좋은 말로 대화를 건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말에 담긴 색깔이 아름다우면 삶의 색깔 역시 아름답다는 것을.(221023) 2022. 10. 25.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