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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507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빨간 우체통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빨간 우체통/윤재철 입력 :2021-12-23 20:40ㅣ 수정 : 2021-12-24 02:33 빨간 우체통/윤재철 누구에게도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키는 더 자라지 않는 채 짜장면집 배달통처럼 모서리는 허옇게 빛도 바랜 채 차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신호등 앞 길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하루 종일 하품하며 그래도 누구에게나 아직 받고 싶은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다질링을 여행할 때였지요. 눈발이 날렸습니다. 커피 가게도 식당들도 문을 닫았군요.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지요. 티베트 수제비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고수를 넣은 뜨끈한 수제비를 먹는 동안 문설주에 매달린.. 2021. 12. 24.
허공에 점을 찍듯 [이 한편의 시조] 허공에 점을 찍듯 /김용태 부산시조시인협회·국제신문 공동기획 김임순 시조시인 | 입력 : 2021-12-05 19:37:17 ​ 허공에 ​ 점을 찍듯 ​ 떨어지네, 한 잎 한 잎 ​ ​ 한때 세상 ​ 뒤흔들다 ​ 땅에 누운 침묵 보며 ​ ​ ​ 무거운 산도 휘청거린 ​ 그 울림 ​ 못 들었다 마라 ​ ​ ​ 가을이 떠난 자리에 12월이 왔습니다. 버티던 나뭇잎도 겨울바람에 떨어지는 모습 바라봅니다. 시인은 허공에 점을 찍듯 한 잎 한 잎 떨어진다는 묘사로 시작하여 세상 뒤흔들던 한때 무거운 산도 휘청거렸다는 사실을 꼼짝없이 인정하라 다그치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그 울림은 여운이 되어 사색으로 이어집니다. 그 뜨겁던 여름, 무성한 잎을 드리우던 큰 나무 한 그루가 그려집니다. 무장무장 .. 2021. 12. 10.
♣세상은 그렇게, 그렇게 가는 거야 ♣세상은 그렇게, 그렇게 가는 거야♣ 세상 살이 살아가기 싫어도 살아야 하고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하는 삶 속의 시간 세상은 그렇게, 그렇게 가는 거야. 만남 뒤에는 이별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온다네. 이별 뒤에는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이 다가오고 아롱진 가슴에 얼룩진 눈물 방울 세상은 그렇게, 그렇게 가는 거야. 세상이 좋아도 가시밭길을 갈 때는 가야 하고 떠나기 싫어도 빈손으로 떠날 줄 알아야 하고 세상은 그렇게, 그렇게 가는 거야.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꽃이 진다네. 한번 태어나면 누구나 떠나가는 인생 아니던가. 아롱진 가슴에 얼룩진 눈물 방울 세상은 그렇게, 그렇게 가는 거야. 한번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을 덧없는 세월에 마음까지 따라가지 말자. 세월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무거운 짐만 싣.. 2021. 12. 7.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24〉 기사입력 2021.12.04. 오전 3:02 ……춥지만, 우리 ​ 이제 ​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 ​ 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 ​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 이렇게 물어보기 ​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 ​ ―김강태(1950∼2003) ​ ​ SF(Science Fiction) 영화에는 외계인도 나오고 우주선도 나오니까 황당한 거짓말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SF의 묘미는 ‘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같은, 더 낯선 상상력에 있지 않다. 이 장르의 본질은 인간 바깥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라는 명제에 있다. 사람 아닌 자의 눈에 비친 사람은 어떠한가, 혹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걸 탐색하는 것이 SF 장르다. ​ 차가운 AI와 인조인간 사이에서.. 2021. 12. 5.
마지막 그곳 천상의 포장마차 같은… 귀천 시인의 ‘세상 소풍’ 마지막 그곳 입력 :2021-09-05 17:28ㅣ 수정 : 2021-09-06 02:13 [작가의 땅] 충남 안면도 천상병 고택 ▲ 충남 안면도에 자리한 천상병 시인의 고택. 경기 의정부 수락산 자락에 있던 시인의 집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그의 오랜 팬인 모종인씨가 하나둘 옮겨 와 이곳에 조성했다. 오래되고 낡은 모습으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안면(安眠)도에 소풍 온 이들을 맞는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시인 고택 앞.. 2021. 11. 26.
사람 지나간 발자국 사람 지나간 발자국[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19〉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1-10-30 03:00수정 2021-10-30 03:00 아름다워라 나 문득 눈길 머물러 그것의 고요한 소리 보네 누군가가 슬쩍 밟고 갔을 저 허리 잘록한 소리 한참 살다 떠난 부뚜막 같은 다 저문 저녁 같은 ―이경림(1947∼) 사랑시에서 고독은 좋지 않은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마주 보는 둘이 있어야 하니까, 홀로 있는 고독이 좋을 리 없다. 고독한 연인은 이별 앞의 연인이다. 혼자서 하는 사랑은 슬픈 사랑이다. 그렇지만 사랑시를 제외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시와 고독은 오래전부터 유명한 짝꿍이었다. 슈타이거라는 이론가가 정리하기를, 서정시는 대체로 고독의 공간을 다룬다고 했다. 혼자 고요히 앉아, 삶과 세계에 .. 2021.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