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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507

위 로 위 로 / 윤동주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쳐다 보고 있는데 나비 한 마리가 꽃밭으로 날아 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 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 버린다. ​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 나이보다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 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 2021. 11. 15.
"이 가을에 "이 가을에 누군가를 만나고 싶습니다" 11월7일 절기 입동 그렇지만 계절은 늦가을 마지막 단풍잎이 떨어지는 날까지 가을이라고 우기고 싶어 집니다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꼭 누군가인 당신과 함께 가을의 산사길을 걷고 싶습니다 금년 가을 하늘은 유난히도 파랑 입니다 이 파랑하늘 아래에서 누군가인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금년이란 한해를 우리는 아~니 나는 이렇게 맞이하고 살아오면서 몇 되지않는 사람 사람들을 생각을 해봅니다 퍽도 고운날이라고 감탄 감탄을 하면서--- 누군가를 꼭 만나야 될것 같다는 생각으로 꽉 차버린 가을입니다 약속한 사람도 없으면서 강가에 갈대 억새가 코스모스 꽃길이 있는 그 곳서 누군가와 함께 꼭 걷고싶습니다 금년 가을이 유난히도 맑고 파랑인것은 살아온 날들이 아쉬워서 너무 아.. 2021. 11. 10.
추억 [최영미의 어떤 시] [44] 추억(Remembrance)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1.11.08 00:00 모든 것은 끝났다! -꿈이 알려준 대로; 미래는 희망에 빛나기를 그만두었고 내 생애 행복한 날들은 얼마 되지 않네 불행의 차가운 바람에 얼어붙어 내 삶의 새벽은 흐려졌구나. 사랑이여 희망이여 기쁨이여 모두 안녕! 추억에도 작별을 고할 수 있을까! -바이런(George G Byron·1788∼1824) 가을은 추억의 계절인가? 봄이 더 감질나게 추억을 환기시키지 않던가? 찬 바람 부는 11월에 읽으니 ‘불행의 찬 바람’이 더 실감 난다. 내 생의 새벽에, 여고 1학년 시절에 만든 시화집에 실려 있는 시를 다시 꺼내 음미했다. 행복할 날들은 얼마 남지 않았네. 시에 쓰인 영어는 중학생도 .. 2021. 11. 8.
<비누 두 장>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산모가 준 뜻밖의 선물...그날 나는 다시 시인이 됐다 입력 2021.11.02 17:00 김기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대학병원 교수입니다. 마취 의사이며, 세부전공은 산과 마취입니다. 나는 늦깎이 시인이기도 합니다. 2016년 4월 ‘월간 시’가 주최한 제7회 추천 시인상 공모에 당선돼 공식 등단했습니다. 중1 때부터 시를 썼지만, 쓰다 태우기를 반복한 탓에 모아둔 시는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윤동주.. 2021. 11. 5.
뺄셈 오피니언전문가칼럼 [최영미의 어떤 시] [43] 뺄셈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입력 2021.11.01 00:00 뺄셈 덧셈은 끝났다 밥과 잠을 줄이고 뺄셈을 시작해야 한다 남은 것이라곤 때묻은 문패와 해어진 옷가지 이것이 나의 모든 재산일까 (중략) 찾았다가 잃어버리고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 또한 부질없는 일 이제는 정물처럼 창가에 앉아 바깥의 저녁을 바라보면서 뺄셈을 한다 혹시 모자라지 않을까 그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김광규(金光圭·1941∼) 김광규 선생의 시선집에 집에 관한 시들이 많다. 서울로 이사한 직후에 읽어 그런지 ‘뺄셈’이나 ‘고향’ 같은 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절창은 4·19 세대의 내면 풍경을 노래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고 개인적으로 그의 ‘밤눈’을 무척 좋아하지만, 밤늦.. 2021. 11. 1.
낙 엽 낙 엽 시 / 레미 드 구르몽 시몬, 어서가자, 나뭇잎 져버린 숲속으로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낙엽의 빛은 부드럽고 그 소리 너무도 나직한데 낙엽은 이 땅 위에 연약한 표류물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해질 무렵 낙엽의 모습은 서글프고 바람만 몰아치면 낙엽은 정답게 외치는데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발길에 밟히면 영혼처럼 웃고 날개소리, 여인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니 오라, 날은 이미 저물고 바람은 우리를 휩쓸고 있다. 시몬, 그대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2021.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