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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674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1)전장을 누빈 장수, # Trace 5.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1 전장을 누빈 장수, 태조(제 1대왕 1335~1408) bep 15. 2022 조선 창업 군주 태조 이성계는 평생토록 전장을 누비던 고려의 무인(武人)이고 장수였습니다. 따라서, 일상이 근면한 수련과 기본 체력에 용맹한 기세가 그의 건강을 지탱하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각종 법전을 편찬하고 숭유억불(崇儒抑佛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배척하는)정책 등을 펼치며 조선의 근간을 마련했지만, 몸도 마음도 편치많은 않았습니다. 30여년을 전쟁터를 누비다가 구중 궁궐에 갇혀지내니, 갑갑하고 답답한 마음에 속 열이 생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록에 태조는 “속 열이오르고 매양 목이 마를 적에는 포도 한 두 개를 먹어가며 병세를 회복했다.”고 전합니다. 갈증이 나는 사.. 2022. 9. 21.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9> 남한강파수 강원도 조방장원호 왜군 선발대 도강 막아 북상 지체시켜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입력 :2022-05-01 20:34ㅣ 수정 : 2022-05-02 09:05 남한강 파수 강원도 조방장 원호 왜군 남한강 건너려 할 때마다 300명 군사로 격퇴 기세 꺾어 강원도 관찰사 ‘본도방어’ 소환 남한강은 다시 왜군 통행로로 함경도 휩쓸고 강원도 남하 적 김화에서 격렬 저지하다 순국 ▲ 원호 장군이 여주 남한강에서 도강하려는 왜군을 무찌른 것을 기리는 임진전승비. 신륵사 일주문이 바로 오른쪽에 보인다. 서동철 논설위원 강원도 조방장(助防將·주장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 원호(元豪·1533~1592)는 남한강 물길이 경기도로 흘러드는 여주에서 도성으로 향하는 왜군 선발대에 맞섰다. 원호 군사가 남한강을 가로막자 왜.. 2022. 9. 19.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8> 해유령전투 ‘승장’ 부원수 신각 ‘진영이탈’ 씌워, 승전보 도착 날 참형…비운의 희생양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해유령전투 ‘승장’ 부원수 신각 백성 항전 의지 들끓게 한 첫 육상전 승리 ▲ 경기 양주 해유령전첩지 전경. 해유령은 지금도 양주와 파주를 잇는 중요한 통로다.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조선군이 참패를 거듭하던 임진왜란 초기 양주 해유령전투는 누구나 인정하는 육전(陸戰) 최초의 승전이다. 부원수 신각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며 조선군과 백성 모두에게 왜적에 맞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신각 장군은 한강방어전에서 패퇴하면서 도원수가 아닌 유도대장 진영에 합류했다는 이유로 해유령 승전이 조정에 알려진 바로 그날 처형되고 말았다. ●양주에서 군사 수습해 왜군 요격 신각 장군은 출생 연대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2022. 9. 18.
신의 정원 조선 왕릉(39)근대 물결 거센 파도 치는데 치마폭에 싸인 힘없는 왕 신의 정원 조선 왕릉(39) 근대 물결 거센 파도 치는데 치마폭에 싸인 힘없는 왕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종왕후의 경릉(景陵)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55hansong@naver.com 사진 제공·문화재청, 서헌강, 이창환 입력2011-02-21 13:39:00 2011년 775 호 근대 물결 거센 파도 치는데 치마폭에 싸인 힘없는 왕 경릉 정자각의 잡상, 용마루 취두(鷲頭) 아래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의 잡상이 보인다. 이 잡상은 궁굴과 종묘에도 있으며 각종 마귀를 쫓기 위한 수호적 상징물로 해석된다. 경릉(景陵)은 조선의 제24대 임금인 헌종(憲宗, 1827~1849)과 원비 효현왕후(孝顯, 1828~1843) 김씨, 계비 효정왕후(孝定, 1831~1903) 홍씨의 능원이다. 이 능.. 2022. 9. 16.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7> 충주 패전 도순변사 신립 선조 몽진 재촉 치명적 패배… ‘강물로 말 달린 비겁한 장수’ 탄금대 패장 평가는 혹독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충주 패전 도순변사 신립 ‘이탕개의 난’ 등 평정 큰 기여 연전연승 북방 주름잡던 맹장 정예의 기병 주축 전술 펼치려 험한 조령 대신 탄금대 배수진 항전하다 물에 뛰어들어 최후 ‘지략 없이 큰소리만 치는 무장’ 류성룡 불공정 평가 탓 시각도 ▲ 신립 장군이 순국한 장소를 알리는 탄금대의 표석. 서동철 논설위원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패전은 조선에 결정적 상흔을 남겼다. 중앙군과 충청도 군사 대부분을 동원한 결전이었다. 전투를 지휘한 신립 장군에 대한 선조의 믿음이 두터웠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신립은 여진족이 북방을 공격한 이탕개의 난을 평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용.. 2022. 9. 14.
신의 정원 조선 왕릉(38) 신의 정원 조선 왕릉38 18살에 급서한 효명세자 ‘문조’로 거한 대우를 받다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수릉(綏陵)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55hansong@naver.com 사진 제공·문화재청, 서헌강, 이창환 입력2011-01-31 09:16:00 2011년 773 호 18살에 급서한 효명세자 ‘문조’로 거한 대우를 받다 3차례 천장 끝에 구리시에 자리잡은 수릉은 제례의 시작과 끝남을 알리는 배위(판위)가 홍살문 앞에 놓인 것이 특이하다. 배위의 위치는 후세에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홍살문 앞 네모난 판석이 깔린 곳이 판위다). 수릉(綏陵)은 조선 제24대 임금인 헌종의 부모 추존 황제 문조(文祖, 1809~1830)와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 1808~1890) 조씨의 합장릉이다. 문조는 제23.. 2022.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