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역사) 이야기674 신의 정원 조선 왕릉33 신의 정원 조선 왕릉33 살아선 왕실의 살림꾼 죽어선 시부모 다섯 분 모셔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홍릉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55hansong@naver.com 사진 제공·문화재청, 서헌강, 이창환 입력2010-12-13 11:51:00 2010년 766 호 살아선 왕실의 살림꾼 죽어선 시부모 다섯 분 모셔 날렵하고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홍릉의 사각 장명등. 홍릉(弘陵)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英祖)의 원비 정성왕후(貞聖王后, 1692~1757) 서씨의 능이다. 홍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서오릉지구 북서쪽 능선에 자리하며, 남동쪽에서 북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영조는 왕후가 먼저 승하하자 이곳에 왕후의 장지를 정하면서 장차 자신도 함께 묻히고자 했다. 그래서 왕비 능의 오른쪽 정혈(正.. 2022. 8. 9. 태조 이성계의 사찰에서 사지가 찢긴 불상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태조 이성계의 사찰에서 사지가 찢긴 불상이 널브러져 있었다 입력 : 2022.08.09 05:00 수정 : 2022.08.09 09:37 경기 양주 천보산(423m) 자락에 자리집고 있는 양주 회암사터 항공사진. 발굴결과 산 아래쪽 계곡에 차곡차곡 쌓은 8개의 석축 위에서 70여개 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발굴 현장을 그대로 노출시켜 놓았다.|양주 시립 회암사지 박물관 제공 경기 양주 천보산(423m) 자락에 고색창연한 절터가 버티고 있다. 회암사터이다. 산의 아래쪽 계곡에 차곡차곡 쌓은 8개의 석축 위에 그대로 노출된 70여기의 건물터와 함께 그곳에서 활약한 고승들의 기념물까지…. 사적으로 지정된 구역만 1만여평(3만3391㎡)에 이르는 절터에 서면 600년의 시공을 초월한 듯한.. 2022. 8. 9.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2>다대포첨사 윤흥신 장군 “피신은 없다, 죽음만 있을 뿐”… 임진왜란 첫 승리 이끈 무관 윤흥신 입력 :2022-01-16 20:16ㅣ 수정 : 2022-01-17 04:30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다대포첨사 윤흥신 장군 ▲ 부산 동구 초량동에 세워진 윤흥신 장군 석상. 부산지하철 1호선은 전체 길이 40.6㎞에 역이 모두 40개에 이른다. 다대포진 수군첨절제사 윤흥신 장군의 흔적을 찾아가려면 서남쪽 종점인 다대포해수욕장역을 한 정거장 앞둔 다대포항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제 다대포항은 크고 작은 어선이 가득 들어차고, 대형 어시장과 줄지은 횟집이 손님을 부르는 부산 지역 대표 어항(漁港)의 하나가 됐다. 그럼에도 다대포진의 군선 정박지였을 다대포항 주변 지형은 임진왜란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개전 첫 전.. 2022. 8. 8.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1>부산진첨사 정발 장군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부산진첨사 정발 장군 외국 선교사가 기록한 부산진 전투 “훌륭한 장수… 총대장이 먼저 전사” 정발, 이순신과 함께 능력으로 발탁 조선왕조실록엔 무능하게 전해져 수십년 지나 의로운 죽음 인정받아 ▲ 정공단. 정발 장군이 순국한 부산진성의 서문 자리에 1766년(영조 42) 부산진첨사 이광국이 세웠다.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하는 데 있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존재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결정적이다. 하지만 이 엄청난 국가적 변란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전국 곳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수많은 사람들의 역할이 있었다. 갈수록 잊혀져 가는 임진왜란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언제나 논란의 복판에 있는 원균은 다루지 않는다. .. 2022. 8. 7. 조선 최고의 벼락 출세자, 유자광 (7) 조선 최고의 벼락 출세자, 유자광 (7) 경복궁 문지기에서 단숨에 재상까지 by두류산Jul 20. 2022 조선 최고의 벼락 출세자, 유자광 - 경복궁 문지기에서 단숨에 재상까지 (7) 장원급제하여 병조참지에 오르고, 남이의 역모를 막아 재상이 되다 세조 14년 1월, 피부병이 심해진 세조는 정희왕후와 더불어 세자를 거느리고 온천 치료차 온양으로 거동하였다. 유자광은 그동안 훈련시켜온 총통군을 어가행렬의 양쪽에 호위하게 하여 행차를 더욱 장엄하게 하면서도 임금의 온양행궁 행차를 효과적으로 경호하였다. 유자광의 두 번째 벼락출세의 전환점은 세조의 온양행궁 행차에서 거행한 과거였다. 세조는 온양행궁에서 온천요양을 하면서, 예조와 병조에 별시(別試) 문무과를 치를 것을 지시하였다. 유자광은 병조정랑에 오를 때.. 2022. 8. 4. 신의 정원 조선 왕릉32 신의 정원 조선 왕릉32 왕권강화 정치적 신념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 조선 최장수의 왕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원릉 이창환 상지영서대 조경학과 교수 55hansong@naver.com 사진 제공·문화재청, 서헌강, 이창환 입력2010-12-06 11:56:00 2010년 765 호 왕권강화 정치적 신념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 원릉(元陵)은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 김씨의 쌍릉이다. 영조는 숙종 20년(1694) 9월 13일 창덕궁 보경당(寶慶堂)에서 태어났다. 영조의 어머니는 널리 알려진 대로 천비 소생의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다. 영조는 83세까지 향수(享壽)를 하고, 51년 7개월간 치세를 해 조선.. 2022. 8. 2.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1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