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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674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관군이 외면한 서인의 ‘행동대장’… 칠백의총에 서린 기개 2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관군이 외면한 서인의 ‘행동대장’… 칠백의총에 서린 기개 입력 :2017-03-10 20:40ㅣ 수정 : 2017-03-10 23:00 의병장 조헌의 발자취… 금산·옥천 우리가 아는 중봉 조헌(1544~1592)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이다. 금산 칠백의총에 남은 ‘중봉 조선생 일군 순의비’(重峰 趙先生 一軍 殉義碑)에 새겨진 “죽을지언정 국난이 닥쳤는데도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는 사실상의 유언처럼 그의 죽음은 극적이다. 그럴수록 붕당정치가 본격화하던 시절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따른 서인의 중심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동서분당 이후 서인의 ‘사상적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칠백의총의 ‘중봉 조선생 .. 2022. 6. 24.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천금 잃어도 할말 없구나”… 도박판 묘사도 거침 없는 한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천금 잃어도 할말 없구나”… 도박판 묘사도 거침 없는 한시 입력 :2016-10-30 14:00ㅣ 수정 : 2016-10-30 14:00 18세기 조선의 풍경 ‘한경사’ 18세기 후반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서울의 거리 풍경은 바뀌기 시작한다. 시전 주변에는 소리꾼이나 탈놀이를 하는 유랑예능인과 실감나게 소설의 줄거리를 낭송하는 전기수가 몰려들었다. 서민의 건강한 삶을 묘사한 풍속화는 물론 에로티시즘이 가미된 ‘야한 그림’도 대량 유통됐다. 유흥가가 북적이면서 기생의 수요도 늘어났으며, 도박판도 드물지 않았다. ▲ 긍재 김득신의 ‘몰래 하는 도박’. 강이천이 한시로 묘사한 도박판의 풍경과 닮은꼴이다. 중암 강이천(1769~1801)의 ‘한경사’(漢京詞)는 전 시대와는 달라.. 2022. 6. 22.
삼국통일의 기쁨에 취해 삼국통일의 기쁨에 취해 전성영 사진작가 alisoo21@naver.com 입력2015-03-30 11:56:00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섬 3개와 못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든 뒤 그곳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온다.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고 기록돼 있어 현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2013년 봄 촬영한 안압지의 밤 풍경이다. 신라 왕족, 귀족들은 삼국통일 후 찾아온 평화와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이곳에서 노루와 사슴이 뛰노는 모습을 보며 해 넘어가는 줄 모르고 연회를 즐겼을 것이.. 2022. 6. 21.
당개나루를 사수하라! 당개나루를 사수하라! 입력2016-01-26 09:54:21 경기 연천군 미산면 당개나루(당포나루)로 흘러들어오는 당개 샛강과 임진강 본류 사이에 특이한 형태의 성곽이 있다. 두 강이 만나는 곳에 약 13m 높이의 삼각형 자연절벽이 있고 그 위 대지 위에 축조된 성곽이다. 동쪽 입구를 가로막아 성벽을 쌓고, 남쪽과 북쪽은 자연절벽을 그대로 이용했다. 연천군 임진강과 한탄강 북안에 있는 고구려시대 성곽 가운데 당포성, 호로고루, 은대리성은 모두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입지 조건과 평면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미수 허목의 ‘기언별집’ 제15권 ‘무술주행기’에 ‘마전 앞의 언덕 강벽 위에 옛 진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위에 총사가 있고, 그 앞의 나루를 당개라 하는데 큰 물이 흘러 나룻길로 통한다’는 기록.. 2022. 6. 17.
박영규의 지식카페 - (9) 의녀들의 직장 생활 박영규의 지식카페 - (9) 의녀들의 직장 생활 Ⅰ 관비 신분이지만 조선 여성들 중 가장 교육 많이 받아 남성들이 첩으로 가장 선호,‘약방기생’으로 불리기도 남자 의원들은 부인병 진료에 한계 있어 태종때 양성제도 도입 중국·서양 역사선 찾아볼 수 없어 궁궐에 근무하는 여성 중에 궁녀 다음으로 핫한 전문직 여성을 꼽으라면 단연 의녀였다. 의녀는 비록 관비 신분이었지만, 조선 사회에서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전문직 여성이었다. 뜻밖에도 의녀는 조선 남성들이 첩을 들일 때 가장 선호하던 여인이었다. 거기다 의녀는 관청에 예속된 관비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종이기도 했다. 도대체 의녀의 어떤 면 때문에 조선 양반들은 그들을 첩으로 들이기 위해 안달이 났으며, 또 관비들은 왜 의녀가 되길 그토록 소원했을까? 의녀를 다.. 2022. 6. 16.
백제 부활을 꿈꾸던 곳 백제 부활을 꿈꾸던 곳 전성영 사진작가 alisoo21@naver.com 입력2016-02-01 17:00:14 660년 백제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과 귀족들이 당나라로 압송된 뒤 주류성을 중심으로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개암사 뒷산에 위치한 우금산성이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의 복신 장군과 도침 승려는 주류성을 근거지로 삼고 부흥운동을 펼쳐나갔다. 백제부흥군은 대전과 충남 금산 방면을 수복하고 662년 5월에는 일본에 머물고 있던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데려와 왕위를 잇게 했다. 그러나 부흥군 수뇌부 사이에 불화가 싹터 복신이 도침을 살해하자 내부는 혼란에 빠진다. 이때 나당연합군이 공격해오자 다시 성을 빼앗기고, 수세에 몰린 백제부흥군은 그해 12월 지휘부를 주류성에서 .. 2022.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