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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538

‘사막같은’ 이태원, “물 한모금이 황금처럼 귀해” [모던 경성] ‘사막같은’ 이태원, “물 한모금이 황금처럼 귀해” 입력2022.11.05. 오전 6:01 수정2022.11.05. 오전 11:46 [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일본인 거주 남촌에 수도관 집중, 8000명 사는 이태원엔 우물만 5개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일제는 일본인이 주로 사는 남촌에 수도관을 거미줄처럼 깔아 수돗물을 공급한 반면, 조선인이 대부분인 북촌과 1936년 경성에 편입된 이태원, 공덕 등지에는 수도관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조선인 대부분은 식수를 우물물에 의존하는 민족차별을 겪었다. ‘우리 동리 이태원정(町)은 턱앞에는 칠백리의 긴 물줄 한강이 보기 좋게 놓여있고, 등 뒤 수철리(水鐵里·금호동 일대) 산 등에는 경성부의 대(大)수원지가 있어 10년 대한(.. 2022. 11. 5.
[김명환의 시간여행] [16] 중앙선 넘은 택시 한 대 때문에… [김명환의 시간여행] [16] 중앙선 넘은 택시 한 대 때문에… 차량 2천대 뒤엉켜 한밤 아수라장 김명환 사료연구실장 입력 2016.04.27 03:00 토요일이던 1971년 3월 27일 저녁, 서울 청량리에서 신설동에 이르는 2㎞ 도로가 아수라장이 됐다. 차량 2000여대가 아홉 겹, 열 겹으로 뒤엉켜 2, 3시간 동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운전자들은 요란하게 클랙슨만 울려댔다. 일반적 정체 상황을 넘어서는 사태였다. 긴급 출동한 경찰은 신호등을 모조리 끄고 엉킨 차량을 수신호로 한 대씩 푸느라 자정이 다 되도록 고생했다. 어이없게도, 사태를 일으킨 건 단 한 대의 택시였다. 경동시장 앞 네거리에서 차량 정체로 서 있던 택시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을 하려다 반대편 차들과 엉키면서 연쇄반응이 시.. 2022. 11. 5.
박정희와 한강 4 박정희와 한강 4 by성일만Sep 25. 2022 첫 번째 한강 김일성은 1950년 4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만나 한국전쟁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당시 소련은 공산권의 맹주였다. 전쟁을 위해선 반드시 스탈린의 재가가 필요했다. 다음 달엔 베이징으로 건너가 마오쩌둥을 면담했다. 김일성은 7월이면 장마가 시작되는 관계로 6월 말 전쟁을 개시하겠다는 뜻을 마오에게 전달했다. 두 강대국의 동의를 얻은 김일성은 6월초부터 38선 일대에 집중적으로 병력과 화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앞둔 김일성은 승리를 확신했다. 당시 남북한의 당시 군사력 우열은 뚜렷했다. 미국은 이미 1950년 1월 발표된 ‘애치슨라인’을 통해 자신들의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시켰다. 미군은 약간의 군사고문단만 남겨 둔 채 모두 떠나.. 2022. 11. 3.
박정희와 한강 3 박정희와 한강 3 by성일만Sep 25. 2022 육사 8기생 그 기간 박정희가 무얼 했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일본 패망 8개월 여 후인 1946년 5월 8일 박정희는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의 해방된 조국은 심각한 홍역을 앓고 있었다. 무질서와 극심한 좌우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다. 일제가 물러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향인 구미와 서울을 오가던 박정희는 다시 군인의 길을 택했다. 1946년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생으로 3번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동기생 가운데 자신보다 9살 어린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도 있었다. 박정희는 같은 고향(경북 구미)인데다 교사 경험을 공유한 김재규를 상당히 신뢰했다. 5사단 사단장 시절 연대장 김재규를 부하.. 2022. 11. 1.
박정희와 한강 2 박정희와 한강 2 성일만Sep 24. 2022 혈서 급진파 일본 청년 장교들은 총리 관저를 습격했다. 그들은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기치를 전면에 내걸었다. 일본 근대 역사상 처음 있는 쿠데타였다. 하지만 역모는 실패로 돌아가고, 주동자들의 상당수는 처형을 당했다. 청년 장교들은 공산주의에 기울어져 있었다. 당시 군부 내 나돈 유인물에는 공산주의적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사건 전 일본의 한 공산주의자는 국민의 모든 재산을 천황에게 반납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청년 장교들은 메이지이후 다이쇼(大正)를 거치면서 정치권의 부패, 재벌과 정치권의 결탁, 부의 불균형 등으로 일본이 국가적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신을 통해 새로운 국가.. 2022. 10. 28.
박정희와 한강 1 박정희와 한강 1 by성일만Sep 24. 2022 한강인도교 2022년 현재 한강에는 총 32개의 다리가 있다. 한강 위에 최초로 다리가 놓인 것은 1795년이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다녀오기 위해 한강 위에 다리를 만들었다. 정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다.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죽은 비운의 왕자다.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조선 궁궐의 온갖 비극 요소가 버무려져 있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홍봉한의 딸이다. 정조와는 대척점에 서 있던 노론 벽파의 중심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데 앞장섰다. 외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셈이다. 다리는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연들을 이은 채 한강을 가로 질러 놓여졌.. 2022.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