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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674

유배를 가다 유배를 가다 김맹성과 표연말이 주계에게 말하여 과인이 알았으니, 이는 잘못된 일이다 by두류산Dec 06. 2022 1부 유배를 가다 1장 재상들은 임원준과 이심원, 그리고 보성군까지 대질 심문을 마쳤지만,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려웠다. 훈구대신들은 그동안 이심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터라 진술의 진정성을 낮추어 보았음에도, 임원준의 말이 허위와 변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임원준이 거짓말한다고 단정할 증거도 없었다. 정승들은 서로 의논하여 결론을 내리고, 임금에게 대질심문 결과를 아뢰었다. 2023. 2. 21.
창덕궁 창덕궁 by김세중Jan 24. 2023 정월 초사흗날 혹한을 무릅쓰고 창덕궁을 찾았다. 과연 맹추위 때문에 궁을 찾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산해서 좋았다. 어찌나 춥던지 사진 찍을 때 손을 꺼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지만! 창덕궁은 두어 차례 온 기억이 있다. 30년쯤 전 기억이 난다. 직장에서 일본과 중국의 학자를 초청해서 학술대회를 열었는데 남는 시간에 관광을 위해 창덕궁을 찾았고 그때 같이 왔었다.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창덕궁 안에 고종황제가 탔던 승용차가 전시되어 있던 게 기억난다. 창덕궁은 정전인 인정전을 비롯해 동쪽의 선정전, 대조전과 서쪽의 구선원전, 규장각, 내의원 그리고 남동쪽의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등이 비교적 가까이 있고 북쪽 숲속에 후원이 있다. 후원은 창덕궁에 속해.. 2023. 2. 21.
남한산성에 오르다 남한산성에 오르다 386년 전. 역사의 그날을 기억하며 byWynnFeb 19. 2023 오늘은 남한산성에 올랐다. 지금으로부터 368년 전인 1637년 2월.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항복할 것인가? 더 싸울 것인가? 그 고민이 정점에 치닫고 있는 시점이었다. 1636년 12월 차가운 겨울에 시작된 갑작스러운 청나라의 침입. 조선의 왕 '인조'는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피했다. 1636년 12월 28일부터 1637년 2월 24일까지 차가운 49일 동안 조선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와 항전을 했다. 하지만 조선의 조정은 반으로 나눠져 있었다. 청과 결사 항전하자는 세력과 청과 화해 하자는 세력의 갈등. 조정의 내분과 굶주림, 그리고 겨울의 매서운 추위,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후방 지.. 2023. 2. 21.
이토 히로부미 괴롭히고, 항일의병 사진 남긴 '영국신사'들 이토 히로부미 괴롭히고, 항일의병 사진 남긴 '영국신사'들 입력 : 2023.02.20 06:00 수정 : 2023.02.20 06:02 히스토리텔러 기자 “이 이토의 백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기사)이 한국인을 감통(느낌이나 생각이 통함)시키는 힘이 크다. 그중 일개 외국인의 는 일본 시책을 반대하고 한국인을 선동함이 계속되니 통감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의 언급입니다. 대한제국을 집어삼킬 야욕을 거리낌없이 펼쳐가던 이토를 괴롭힌 ‘일개 외국인’이 누구일까요. 바로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인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872~1909)이었습니다. 최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영국 브리스톨시에 ‘베델(한국명 배설.. 2023. 2. 20.
출세 보장된 요직 중의 요직 … 학문 · 인격 · 가문 허물없어야 등용13 출세 보장된 요직 중의 요직 … 학문 · 인격 · 가문 허물없어야 등용 입력2022.11.11. 오전 9:16 수정2022.11.11. 오전 9:19 ■ 지식카페 - 박영규의 조선 궁궐 사람들 - (13) ‘문관 선호도 1위 직장’ 홍문관 ​ 학술기관이면서 왕에게 정치 자문… 사헌부 · 사간원이 제 기능 못할 때 중재 · 방향 제시하기도 ​ 청렴한 관리들 모여 ‘청연각’ 이라고도 불려… ‘문형’ 대제학은 정승보다 명예롭게 여겨 ​ ◇ 출세가 보장된 청요직의 상징 = 홍문관(弘文館)은 조선시대 문관들이 가장 선호하던 직장이었다. 홍문관 관원들의 주요 업무는 궁중의 서적과 역사기록물의 관리 및 문서의 처리였지만, 보다 중요한 역할은 각종 현실 문제에 대한 왕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었다. 학술적인 기관이면서도 .. 2023. 2. 19.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18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입력 :2022-09-04 10:38ㅣ 수정 : 2022-09-04 10:49 18. 호남의병대장에 추대된 고경명 감동적 격문 이르는 곳마다 의병 궐기 잇따라 금산전투로 왜적의 곡창 호남 침공 의지 약화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 2023. 2. 19.